다음달인 1월 27일에 우리 병원에서 '연세의대 내과 연수강좌'가 열립니다.
우리병원 내과는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내분비내과, 신장내과, 호흡기내과, 혈액내과, 종양내과, 류마티스내과, 알레르기내과, 감염내과 이렇게 총 10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번 연수강좌는 내과 환자를 진료하는 개원가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여 내과 내 각 파트별로 최신 지견을 소개하는 시간입니다. 너무 협소한 분야에 국한된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일차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의 일상적인 진료내용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내과의사라면 누구나 궁금해 하는 좋은 정보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큰 대학병원들은 과별로 1년에 한번씩 이런 연수강좌를 열어 일차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의사선생님들과 학문적, 진료적 협조체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연수강좌의 아이템이 좋으면 많은 선생님들이 강의를 들으러 오십니다. 이미 전문의가 되었고 진료경험이 많다 해도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최신 지견에 귀를 기울이고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의사라는 직업의 평생 과제입니다. 이번 연수강좌도 일요일에 열리는데, 진료가 없는 일요일에도 부지런히 공부하는 의사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일요일이 아니면 강의를 들으러 다닐 시간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강의가 준비되지 않으면 그렇게 일요일 연수강좌에 참여하는 수많은 의사 선생님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실례를 범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런 중요한 시간에 제가 종양내과 강의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영광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도 많이 됩니다.
종양내과 의사들의 주된 관심사인 신약과 관련된 부분은 너무나도 빠르게 최신지견이 소개되고 약들이 개발되고 임상연구도 많아서 조금만 한눈을 팔면 도태되기 쉬운 영역입니다. 그리고 종양내과 의사가 아니라면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지식 정보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연수강좌에서 최근에 개발된 신약만 소개하는 것도 사실 적절치 않습니다.
대개의 암환자는 대학병원 진료를 받기 때문에 일차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쉬운 치료 대상이 아닙니다. 주된 치료는 대학병원에서 받고 있는 암환자가 여타의 문제로 개인의원을 찾을 경우 어느 범위까지 검사하고 주된 치료와 병행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일차진료의로서 답답한 부분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는 치료기간 중에 배도 아프고, 열도 나고, 감기에도 걸리고, 피부에 뭐가 나기도 하고, 뭔가 소소한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는데, 그때마다 대학병원 진료를 예약하고 병원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암환자라 하더라도 암이 아닌 다른 문제로 고생하고 치료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지방환자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서울 병원에 가는게 여간 큰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자주 묻습니다. '선생님, 이러저러한 문제가 생기면 집 주변 병원에 가도 되나요?' 저는 '어떠 어떠한 경우가 아니라면 집 근처 병원을 이용하시는 게 좋다'고 적극적으로 권해드립니다. 그런 질문을 하는 환자에게는 직접 진료소견서를 작성하여 그쪽 의사가 우리 환자의 치료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문서를 작성해 드립니다.
특히 고혈압, 당뇨 등과 같은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는 '제가 그런 질환을 전문으로 보는 의사가 아니니 저에게 약 타지 마시고 본인 진료를 전담하고 있는 동네병원 의사선생님에게 진료받고 약을 타시는게 좋다'고 강력히 권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에게도 양가감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과, 여러 병원 다니는 것이 귀찮으니 주된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저에게 한꺼번에 진료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소소한 문제까지 다 대학병원에 와서 진료를 받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연수강좌의 주제를 '암환자에 대한 supportive care'로 잡았습니다.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는 과정, 또 재발하여 2차적인 치료를 받는 환자의 전형적인 사례를 주된 스토리로 소개하여, 그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차 의료기관을 찾는 암환자를 위해 개원의 선생님들이 조치해주고 진료할 수 있는 항목이 무엇이 있는지를 실례를 통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종양내과 의사 입장에서는 매우 전형적인 경우라고 생각하는데, 실재 암환자 진료를 자주 하지 않는 의사들에게는 그런 치료의 궤적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치료 중에는 어떤 증상이 흔하게 발생하고, 그럴 때는 어떤 약을 쓸 수 있는지, 어떤 검사를 해야 하는지, 어떨 때는 지켜봐도 되는지, 어떨 때는 일반 환자와 똑같이 간주하고 치료해도 되는지, 그런 내용들을 환자의 치료 과정을 중심으로 소개되는 강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케이스로 소개하면 상황이 훨씬 잘 이해될 것 같아, 실재 우리 환자 사례를 골라 준비하였습니다.
유방암 환자의 치료과정 중에 흔하게 발생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엮어 그런 과정에 supportive care가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supportive care 분야의 최신 지견, 보험으로 처방가능한 약의 범위, 치료 전략 등을 소개하여, 앞으로 그런 환자들을 진료하게 될 경우 진료 결정과 환자의 병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강의를 준비하였습니다.
최선의 환자 진료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은
단지 의사간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완성된 체계를 갖추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시스템입니다. 누구든지 원하면 대학병원 진료를 손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3차 의료기관으로 접근하는 것이 간단치 않습니다.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처럼 큰 병이 진단되면 누구나 큰 병원 진료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대학병원은 암환자로 넘쳐납니다. 치료 중인 암환자는 열 한번만 나도 지방에서 이용하려면 오육십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 병원에 옵니다. 정작 응급상황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게 환자들이 몰리니 진료시간은 짧고 환자 진료의 질은 떨어집니다. 환자들은 자기의 선택으로 서울의 몇몇 큰 대형병원을 다니면서도 불만이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동네 병원은 믿지 못하겠다면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암환자라고 하면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가라고 일언지하에 진료를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맥락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것은 진료거부라기 보다는 질병과 관련된 증상일 경우 원래 주치의가 진료하고 검사하는 것이 효율적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믿을만한 동네 병원 의사가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렇다면 믿을만한 동네 병원이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환자가 신뢰할 수 있는 의사와 병원은 어떤 자격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지금은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입소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해답을 명료하게 제시할 수만 있다면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잡고 환자들에게 양질의 진료를 제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국가의 의료정책적인 측면에서 너무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학병원과 일차의료기관의 효율적인 연계 시스템의 개발하기 위해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연수강좌를 들으러 오신 선생님들 입장에서 어떤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을 하다보니 궁극적으로는 매우 시스템적인 고민을 하게 됩니다.
결국
별 거 아닌것 같은 문제들, 소소해보이는 문제들조차 그 기원을 찾고 해결을 모색하다보면
제도와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의사라는 직업 집단은 내 눈 앞의 환자를 위해서 개별적으로 고민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보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시스템을 개혁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노력에는 취약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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