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조직검사에 대한 단상

슬기엄마 2013. 1. 3. 23:09

 

새해 벽두부터

Impact factor가 높은 빅 저널 JAMA 와 종양학에서 손꼽히는 JCO 에

다소 논쟁적인 두 편의 논문이 실렸다.

 

2013 JAMA Rebooting cancer tissue handling in the sequencing era.pdf

2013 JCO Use of research biopsies in clinical trial.pdf

 

JAMA 1월호 에서는

2000년 human genome project 의 성공에 어 10년도 채 되지 않아 cancer genome project 시대가 열렸고, 이제 암 유전자를 sequencing 하는 시대에 암 조직을 다루는 방법이 얼마나 표준화되고, 잘 다루어져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한 단락의 소제목은

Frozen tissue: the jewel in the Crown for cancer genomics.

수술 중 혹은 조직 검사에서 얻는 조직을, 조직이 나오자마자 수초 안에 영하 70도로 얼려서 얻게 되는 신선 조직 (동결조직, frozen tissue) 이야말로  cancer genome 시대에 '왕관의 보석'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다. 그만큼 암 유전체 연구에서 이 조직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나 제목이 좀 과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반면

JCO 1월호 에서는

조직검사는 임상연구의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상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원칙이 되는 규정집이나 환자 동의서에 그러한 정보가 제대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적 목소리를 담은 논문을 싣고 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의 MD anderson cancer center 에서 수행한 57개의 다국적 임상시험의 규정집을 분석하여, 조직 검사의 과학적 근거, 예상되는 연구결과, 이 연구에서 환자가 추가적으로 진행하게 되는 조직검사의 의미 등이 과연 얼마나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환자에게 설명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전체 연구의 95%에서 조직을 얻었지만 구체적인 연구가설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는 임상연구도 많았다. 임상연구에서 요구하는 일정량의 검체를 제출하지 않으면 혹은 제출하지 못하면, 그 환자는 임상연구에 등록될 수 없도록 조직검사를 의무화한 연구가 전체 연구의 70%에 달했다.

 

조직은 중요하다.

검체를 포르말린으로 고정하여 파라핀 블럭으로 만들어 보관하는 것보다

검체를 얻자마자 빨리 얼려놓은 동결조직이 훨씬 연구에 유용하다. 이러한 검체가 연구의 질을 보장한다.

 

나도 우리병원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유방암 임상연구를 담당하고 있지만,

실제 동결조직을 얻으려면 조직검사를 할 때 누군가가 따라가서 옆에 지키고 서 있다가

환자에게서 조직이 나오자마자 질소통에 그 검체를 담그고

가능한 빨리 영하 70도 이하의 냉장고에 보관을 해야 한다.

그 누군가의 인력과 시설,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물론 이런 과정이 편리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시설 자체가 개선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 우리 형편은 그렇지 않다.)

검사를 해주는 파트는 그런 임상연구 과정을 따라주는게 별로 편하지 않다.

왜냐하면 보통으로 하는 프로세스가 아니기 때문에 임상연구라고 하니까 협조해 주는 셈이다.

 

JAMA 에서는 이러한 process를 개선하고, 가능한 비침습적 검체를 얻어 동결절편 조직으로 보관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비침습적인 검사 - 환자에게 덜 공격적인 - 에서 제대로 된 검체를 얻으려면 역시 이 또한 시설, 설비, 조직검사자의 능숙함 등이 요구된다.

JCO 에서는 이미 조직검사를 통해 암이라는 것을 진단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같은 검사를 반복하거나 보다 많은 검체를 얻어야 한다는 이유로 과도한 검사를 하게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검사를 반복하다가 검사 합병증으로 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한 윤리적 뒷받침, 안전망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임상연구에서 의무적으로 조직을 제출하라는 강압적 요구보다는 선택적 제출을 할 수 있도록 규정집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유치한 수준에서나마 연구라는걸 해보고 사는 나로서도

 JAMA의 논지처럼 환자 조직의 중요성에 대해 백프로 동의하게 된다.

제대로 된 조직을 세트로 갖고 있는 것은

막강한 연구력의 근원이요, 연구 후 나온 결과의 타당성을 보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무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임상연구에서  힘들게 환자로부터 얻어낸 조직으로

도대체 뭘 분석해 보겠다는 건지 그 목적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임상연구 규정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될 때, 매우 종속적인 느낌, 기분이 나쁘다.

특히 이론적 가정상 이 환자에게 효과가 좋을 것으로 기대되는 신약이라 환자에게 한번 꼭 좀 써보고 싶은데

조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체의 질이 믿을만하지 않다는 이유로 환자가 등록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연구비를 대는, 약을 대는 돈많은 제약회사가 연구 운영의 원칙을 제시한다.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면 등록될 수 없다.

분석과 연구의 목적도 명확하지 않은 어떤 연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 환자들의 조직이 쓰이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환자들이 이런 이유로 임상연구 참여를 꺼려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임상연구 참여를 독려한다.

종양학이라는 학문은 임상연구에 의한 발전으로 그 학문적 기초가 다져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것이 환자에게 이득이 많다고 판단하게 될 때

우리 엄마가 그 대상이라 하더라도 내가 참여를 독려하는데 거리낌이 없을 때

환자에게도 마찬가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연구의 목적, 가설, 의미, 환자에게 요구되는 것들을 명확히, 상세히 설명하고, 환자의 동의를 얻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임상연구를 하게 되면 의사의 설명과 임상연구간호사의 관심 대상이 된다. 연구라는 이름으로 환자에게 해가 되면 안되니까. 그래서 임상연구에 참여한다는 것은 이러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그 자체가 환자에게 여러모로 유리한 점이 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환자의 조직과 피는 너무나 필수적인 연구항목이 되어버린 시대, 이에 대한 윤리적 기준과 원칙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제 모든 연구는 환자의 조직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런 것들이 병행되지 않는 임상연구는 이제 아예 하지도 말것을 권유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기준이 너무 타이트하면 연구자들의 의욕을 꺾고 연구의 성과가 축적되기 힘들다.

이러한 기준이 너무 느슨하면 연구 윤리가 실종된다. 환자가 아니라 실험/시험의 대상자로 전락할 수 있다.

 

의학 발전이라는 대의를 앞세워

연구자의 지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양심의 거울을 들여다보고 떳떳해야 할 것이다.

그 대의 명분하에 얼마나 말도 안되는 실험과 연구가 진행되었던가.

 

지금 내가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주장하고 싶은 진리, 명제가 있다 하더라도

잠시 숨을 골라야 할 필요가 있다.

너무 빨리 달리려고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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