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고생중인 환자를 위해

환자들은 말한다. 좋아질 수만 있다면 어떤 고생도 꾹 참고 견뎌내겠다고. 항암치료도 열심히 받겠다고 결의를 다진다. 몇일 치료가 늦어지면 빨리 치료받게 해달라고 성화다. 사실 항암치료 기간 중 환자가 자신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일이 사실은 많지 않다. 잘 먹고 가글하는 정도. 그러니까 치료 일정이라도 꼬박꼬박 맞춰서 항암치료 받고 부작용 잘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건 환자 입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눈물겨운 투쟁이자 의지의 발현이다. 그러나 환자의 그런 마음과는 달리 항암치료는 효과 이외에도 심한 부작용으로 우리를 괴롭힐 수 있다. 지금 입원해 있는 환자 중 많은 분들이 항암치료 독성때문에 입원하고 계신다. 항암치료를 여러번 하다보면 골수기능이 떨어져서 평균적으로 알려진 정도보다 훨씬 더 심하게 백혈구 수치..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병원에서만 콕 처박혀 지내다가 오랫만에 시내 구경 나갔습니다. 종로2가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 종로2가 사거리에 가면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지오다노 매장 바로 옆 건물입니다. 심심할 때 시간 보내기 딱 좋은 곳입니다. 01 02 03 04 05 책값이 정가의 반도 안됩니다. 좋은 책을 고르려는 열기로 분위기 후끈! 추억의 슈퍼닥터K. 자리잡고 1권 다시 읽습니다. 의사가 되고나서 다시 보니, 뻥이 너무 심하네요. 그래도 여전히 멋져요. K군 집에서 놀고 있는 중고책 팔려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중고책 매입 기준이 있는거 같습니다. 방금 막 팔고간 CD들이라고 하니 왠지 괜찮을게 있을거 같아서 눈빠지게 CD 제목을 확인해봅니다. 예정에 없던 CD도 충동구매로 세 장을 샀어요. 3장에 15000원. 대..

환자들간의 우애

환자들간의 우애. 그래서 환우라고 하나보다. 환자의 존재를 의사나 의료 시스템의 입장에서 지칭하기 보다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 중심으로 표현하는 언어가 환우라는 개념이 아닐까 싶다. 병을 진단하고 치료법을 결정하는 것은 의사이지만 그 병을 감당하고 겪어가고 이겨내는 주체는 환자니까 환자라는 개념이 주는 소극적인 의미보다는 좀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적극적이라는 의미가 잘못 이해되어, 의료진에게 과도한 주장을 하는 환자들도 있다. 내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의료비자 주권운동이 이제 막 태동하여 발전하기 시작하는 단계이므로 일시적인 미성숙 상태에서 보이는 한계라고 믿고, 발전된 모습을 좀 더 기다리고 싶다.) 그래서 환자들끼리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수술받고 항암치료도 마치고 지금은 항 호르몬제만 드시고 있는 분입니다. 정기적으로 찍는 뼈사진에 약간의 이상이 보여서 MRI 로 정밀검사를 했는데 아직 애매한 상태입니다. 뼈전이 클리닉에서 환자의 증례를 토의하고 일단 전이의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 일단 경과관찰 하기로 했습니다. 정밀 검사를 하고 환자가 얼마나 불안해 할까 걱정이 되었는데 나 혼자만의 의견이 아닌 여러 선생님들과 토의하여 내린 결론이 전이 가능성이 높지는 않을 거라고 결론지어져서 내심 기뻐하며 환자 외래방문을 기다렸습니다. 정작 만난 환자는 뼈전이 여부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걱정이 너무 많아 우울해 보였습니다. 경직된 얼굴 표정. 몇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요즘 많이 우울하신가요? 라고 물었더니 아주 당연하다는..

환자와의 더 나은 communication 을 위하여

Debra 선생님과 기념 사진! Debra 선생님은 존스 홉킨스 보건대학 교수님이시고 환자와 의사간의 의사소통에 관한 분야에서 권위자이신 분이다. 어제 서울대 병원에서 강연회가 열려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개인적인 면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조주희 선생님, 선생님과의 면담을 연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분야도 의사와 환자가 처음 만나 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암과 같이 심각한 병이든 고혈압, 당뇨같이 무시무시하면서도 당장 죽지는 않는 그런 병이든 감기처럼 의사 약처방 없이 환자 스스로가 나아야 하는 병이든 그 순간의 communication은 매우 중요하다. 심지어 수술만 하면 나을 수 있는 병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communication 보..

행복한 여름 한 달 - 슬기의 일기 8

8월 한 달은 마음이 즐거웠다. 방학이라 그런 게 아니다. 사실 중3 여름방학은 학교생활을 할 때보다 더 팍팍한 학원 일정에 매여 살아야 한다. 난 그래도 즐거웠다. 방학을 하자마자 미용실로 달려갔는데, 그것도 동네 미용실이 아니라 신촌에서 엄마를 만나 꽤 좋아 보이는 미용실에 가서 염색을 하고 왔기 때문이다. 내 또래들 누구처럼 나도 패션에 관심이 있다. 코디네이션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거나 심혈을 기울여 스타일링을 하는 건 아니지만, 결코 아무거나 막 입지 않는다. 주말에는 외출하는 아빠에게 어울리는 옷차림을 추천하기도 한다. 아빠의 패션감각은 영 아니다. 엄마가 신경을 써 주는 것도 아니고. 사실 엄마의 패션감각은 더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

글쓰기를 통해 엄마와 얘기하기 - 슬기의 일기 7

언제나 바쁜 엄마. 일주일에 한두 번 자기 전에 잠깐 만나는 게 전부다. 내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의대생, 인턴, 레지던트 생활을 하고 있었고 집에 안 들어와도 별로 이상할 것 없었다. 많은 일을 외할머니와 상의하며 지내는 것이 당연했다. 엄마와의 관계는 여러 모로 소원해지기 쉽다. 엄마는 내가 요즘 무슨 공부를 하는지, 어느 학원에 다니는지, 입시를 어떻게 준비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엄마와 직접 만나지는 않아도 같이 하는 일이 생겼다. 학교 글짓기 대회나 논술 숙제, 자기 소개서 등 글 쓸 일이 있을 때 엄마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저녁에 집에 계시는 아빠에게 조언을 부탁했지만 “응, 잘 썼네~” 외에는 평가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엄마는 주제가 뭔지,..

내 나이 70 이어도

할머니가 목소리도 가냘프고 늘 별 말씀도 없으시고 원래 얌전하시고 몸도 좀 약해 보이는 듯 싶고 왠지 비리비리(!)할 것 같은데 어느 새 수술전 항암치료 8번 유방 전절제술 방사선치료 1년간 표적치료를 다 받으셨다. 특별한 합병증 없이 이 전 코스를 다 마치고 오늘 마지막 표적 치료를 받으러 오신 것이다. 할머니, 축하드려요. 기념 초콜렛 하나 받으세요. 한사코 안 받으시려고 한다. 나도 뭘 사왔어야 하는데... 하시면서. 고생 많으셨어요. 그래도 특별한 이벤트 없이 무사히 치료를 다 잘 받으셔서 다행이에요. 이제 마음 홀가분하시죠? 할머니 눈가가 갑자기 벌겋게 짓무른다. 눈물이 글썽글썽 유방을 다 잘라내 버린게 너무 속상해서 잠이 잘 안와. 나이 먹었는데 이렇게 까지 했어야 했나 싶어. 내 나이 70 ..

누구든 내 환자처럼

집이 강릉인 나의 몇명 안되는 총각 환자. 내가 레지던트 3년차 때부터 알던 환자다. 아주 드문 타입의 암이라, 별다른 치료약도 없고, 나빠지는 속도도 아주 느리다.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고 있어서 너무 적극적으로 치료할 필요 없다. 이미 해볼만한 치료는 다 해보기도 했거니와. 그렇지만 최근 뱃속 림프절에만 주로 모여있던 병이 몇달 전부터는 간에도 전이가 되었다. 이 총각은 말이 별로 없고 아파도 아프단 말을 잘 안한다. 자기 병을 잘 아는지 CT 찍고나서 내가 병이 좀 나빠졌다고 해도 별 말이 없다. 다음 계획도 묻지 않는다. 너무너무 아프면 병원에 와서 '좀 아파요' 그정도 표현한다. 오래 아파서 진통제도 잘 조절해서 먹을 줄 안다. 그런 그가 아프다고 하면 아주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아프다는 말을..

나를 위해 무엇을 트레이닝 해야할 것인가

병동 회진을 돌기 전에 어제 하루동안 찍은 환자들 사진 환자 피검사 결과 열 났는지 안났는지 하루 총 소변량 얼마나 되는지 몸무게 변화는 없는지 그런 사항들을 챙겨보면서 전공의들과 미리 환자 상태에 대해 상의를 한 다음에 회진을 돕니다. 회진 돌기 전에 저는 묻습니다. 이 환자 어때요? 전공의 대답은 때론 맞기도 하고 때론 틀리기도 합니다. 전공의 때는 아직 이 환자에서 뭐가 중요한지, 핵심적으로 챙겨야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애써서 노력해도 헛수고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걸 터득하는게 전공의로 트레이닝받는 동안 배워야 할 덕목이죠. 어떤 환자를 보더라도, 얼마만의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신속히 상황 판단을 해서 환자에게는 어떤 정보가 가장 중요하고, 어떤 증상이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