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새로운 시도 - 사진 편집

슬기엄마 2012. 8. 2. 17:07

 

 

제가 오늘 첨으로 블로그에 사진을 올려봅니다.

(음악파일을 올리려다 한번 좌절한 이후로

블로그에 무슨 짓을 해보려고 하지 않았죠.

그냥 글만 무식하게 올리는 재미없는 블로그에요.)

그동안 이런거에는 신경을 안썼는데요, 

한번 해보니 블로그가 좀 산뜻해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오늘 받은 유기농 야채선물세트입니다.

오늘같이 무더운 날, 이렇게 많은 야채, 손수 농사지은 정성과 함께 배달해 주셨습니다.

꽤 무겁습니다.

고**님, 감사해요.

저녁은 유기농 야채를 쌈장에 찍어 먹고 토마토를 후식으로 먹으면 되겠습니다.

 

몇번 재발되었죠.

그 소식을 전할 때 흔들리는 눈빛, 금방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꼭 참고

'선생님, 다른 방법이 있는거죠?'

'그럼요'

'선생님만 믿어요'

'저 그말 제일 싫어해요'

'에이 그러시면 어떻게요. 저한텐 선생님 밖에 없어요'

 

진짜로, 선생님만 믿는 말을 하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나는 누군가의 신뢰의 대상이 될만한 자질과 함량이 아직 부족합니다. 누구보다 내가 그걸 제일 잘 압니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자기 그릇의 크기와 모양 정도는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업은

그 자체로, 환자가 전일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거는 대상이 될 수 있는 직업입니다.

내 인격과 자질의 훌륭함을 떠나서.

그러므로 소명의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직업의 사회적 속성은 그 본질로 규정되지 않습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위치가 규정되고 본질은 '구성'됩니다.

나는 우리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환자 콜도 직접 받고

문자도 받아서 답장해주고

응급실에 도착해서 조치가 빨리 진행되지 않으면 내가 나서서 진두지휘도 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실재 가끔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내 환자의 오래된 히스토리를 잘 모르는 다른 의사가 내 환자를 보게 하고 싶지 않고 내가 직접 다 봐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환자를 위해 어떤 시술이 필요하면 다른 과 의사들에게 내가 직접 도움을 청하고 사정도 하고 편의도 봐달라고 하고, 언제든지 출동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그렇게

내 환자의 신뢰를,

나만 믿는다는 환자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의사로 살려면

난 병원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병원에서 살면

가족은 멀어집니다.

2년째, 가족과 많이 멀어져서 살고 있습니다. 환자가 내 마음을 더 차지한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에게는 소중한 가족이 토양이 되었습니다. 가족을 멀리해서는 안되는거 같아요.

 

그리고 사실 요즘 대학병원은 환자 많이 보는거보다 논문 많이 쓰는거 훨씬 중요하게 강조합니다.

논문 때문에 아무것도 관심없어요. 오로지 논문논문논문.

이제 갓 3년차가 된 전공의한테도 넌 왜 업적이 이모양이냐, 언제까지 그렇게 환자나 보고 살거냐. 이런 말을 공공연히 하는 교수도 있어요.

 

그래서

환자 진료하는 거

연구하는거

교육하는거

다 시덥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은 부산한데

영혼은 없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않좋아도 한명의 환자가 소중합니다.

몇시간에 걸쳐서 그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

절대 아까운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매번 그렇게 살수는 없습니다.

조금은 거리를 두어야죠. 그래야 제가 오래 갈 수 있습니다. 지쳐 쓰러지면 안되니까요.

내가 직접 한것보다 못해도, 응급실에서 끙끙대며 고민하며 일을 해결한 내과 전공의들을 믿어줘야죠.

좀 잘 못해도, 그걸 기회로 가르치고 격려하고 경험하게 해 주어야,

언젠가 전문의가 될 그들에게 응급실에 오는 종양내과 환자들이 어떤지 경험해게 해 주어야

폭넓은 지식을 갖는 내과 의사가 될 수 있겠죠.

 

글을 쓰다 보니

애초 의도와는 달리 이렇게 되었네요.

요즘 의료계의 화두, 응급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