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누가 진료하는 것이 적절할까

슬기엄마 2012. 7. 21. 18:10

삼십대 중반의 여자 환자.

원인모르게 심장기능 폐기능, 신장기능이 나빠져서 중환자실에서 한달간 치료받았다.

치료 과정에서 암이 의심되었지만 확정진단을 내리지도 못한 상태다.

 

내가 오늘 처음 만난 그녀는 의식이 명확하지 않고 반사반응만 있는 것 같다.

워있는 자세를 보니 뇌기능도 많이 떨어져 있다. 꼬집어도 통증 반응이 없다.

기관절개 부위에서는 계속 피가 나고 있다. 간기능이 떨어져서 혈액응고기능이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이것 때문에 기도확보가 어려울 수 있겠다.

장움직임도 하나도 없다.

계속 열이 난다.

몸이 힘든지 맥박수가 빠르다. 최선을 다해 보상작용을 하고 있나보다.

CT를 보니 암으로 진단을 내릴 수는 있을 것 같다.

암으로 진단해야 환자 진료비 부담이라도 덜 수 있겠다 싶다.

 

오늘 처음 본 환자

남편과 어머니를 만났다. 치료적 목적의 검사나 항암치료 등은 하지 않을 거라고, 주말 사이에 호흡기능이나 심장기능 저하로 심폐정지상태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은데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는게 좋을것 같다고 내 의견을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기관절개된 상태를 막아서 환자가 한마디만 하게 해달라고 하신다. 당신이랑 눈을 맞추니까 한마디 말이라도 하는 걸 듣고, 보내고 싶다고 하시며 우신다.

차마 지금의 눈맞춤은 반응이 아니라 반사라고 말씀드리지 못하겠다.

 

그녀에게는 세 아이가 있다. 둘째아이는 장애도 있다. 아이들은 한달째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주말 사이에 아이들 면회를 하게 하시라고 남편에게 당부하였다.

우리는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치료를 준비하는게 아니라 죽음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환자가 편안하게 임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좋겠다고.

주말 오후 변경된 주치의를 만나 가족이 처음 듣는 소식은 임종준비인 셈이다.

 

 

 

 

협진을 의뢰하고 의뢰받는 의사마다 나름의 스타일이 있다.

응급실에 장폐색 환자가 왔는데 이 환자의 수술 여부를 내과에서 지켜보다가 수술 직전에 외과에 의뢰하여 수술할 수도 있고

외과가 경과관찰 하다가 수술 시점을 결정할 수도 있다.

 

봉와직염(cellulitis)으로 온 환자를 내과에서 항생제를 쓰다가 나빠져서 괴사상태로 진행될 때 정형외과에 의뢰하여 수술할 수도 있고

정형외과가 항생제 치료를 유지하다가 수술을 결정할 수도 있다.

 

암이 의심되어 협진을 의뢰하면, 조직검사 하여 암이 확정되면 다시 재협진 달라고 뻐팅길 수도 있고

전과를 먼저 받아 관련 검사를 하여 종양내과에서 진단을 할 수도 있다.

 

어떤 위기 상황이 오기 전까지의 치료는 누가 해도 같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

다만 어떤 과가 어떤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지에는 차이가 있다.

또한 결정적인 순간이 와서 예를 들면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든지- 치료 용법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을 때, 한 순간의 치료결정이 목숨을 좌우하게 될 때 어떤 의사, 어떤 과가 보느냐도 중요할 때가 있다. 그것이 잘 협업되는 것이 실력있는 병원이 될 것이다.

 

지지리도 무더운 한여름.

마음은 더 답답하다.

지금에서야 이 환자를 만나게 되다니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으련만.

환자 상태나 치료의 코스가 바뀌지는 않았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환자는 진작에 종양내과가 진료했어야 하는 환자였는데...

환자는 너무 중환이었다.

환자를 늦게 전과받은것 같아

그동안 치료하느라 고생하신 선생님들께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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