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하고 누리는 삶에 대해
지난 5월, 바야흐로 체육대회 시즌. 우리 반도 체육대회를 대비한 연습을 시작해야 했다. 체육대회 분위기는 뭐니뭐니해도 반별로 옷을 맞춰 입는 ‘반 티’부터 무르익기 시작한다.
학급 홈페이지에 몇 개 사진을 올리면 아이들이 투표를 하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원하는 옷을 찾아보지도 않고, 투표하지도 않았고, 득표 수가 많은 옷은 입기 싫다는 반응이었다. 하나로 모인 의견도, 특별히 강력한 반대의견도 없는 상태에서 흐지부지 제작이 무산될 뻔 했다. 막판에 겨우 의견을 모아 옷을 맞춰 입을 수 있었다.
체육대회를 위해 반 티를 정하는 일은 개인적인 일도 아니고 굳이 내가 나설 일도 아니라 슬쩍 묻어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내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과가 못마땅하면 불평을 할 수 있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많이 겪는 일이다.
나는 목요일 아침 30분 일찍 등교해 어깨띠를 두르고, 피켓을 들고 정문 앞에 서 있는 예절부 활동을 하고 있다. 원래는 학교에서 하는 일은 필수적인 게 아니면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반에서만 생활했었는데 작년 2학기 예절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마음이 바뀌게 됐다. 친한 선배(당시 3학년)가 예절부 부장으로 있었고 2학년 중에서 부원을 모집하는데 차장을 맡을 사람이 없다며 반 강제로 예절부 일을 하게 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학급에서 반장, 부반장이 참여하는 대의원 회의에 예절부 차장 자격으로 참여하게 됐고 그때부터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3학년이 된 지금, 나는 예절부 부장이다. 예절부장은 학생회 임원이기 때문에 매번 전교회의에 참석한다. 반에서 조용히 생활하던 1, 2학년 초반과는 달리 학교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있으면 기억해 뒀다가 회의 때 건의사항으로 제출하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일이 있으면 먼저 한다. 얼마 전 우리 학교가 학생자치 법정 시범학교가 됐다. 학교에서 여러 번 잘못해 벌점이 많이 쌓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변호인단, 검사인단, 판사인단을 선출해 모의법정을 진행하는 것이다. 정식으로 시행하려면 시간이 좀 남았지만 잘못한 학생을 처벌하거나 규칙 정하는 것을 학생들끼리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다. 이 일에도 참여해 볼 생각이다.
복도를 지나다 쓸데없이 켜져 있는 전등을 끄고, 덜 잠긴 채 물이 흐르는 수도꼭지도 잠근다. 난 학교 내 절전/절수 도우미로 자원해 활동하고 있다. 힘든 일 아니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 자원봉사 차원에서 지원했다. 그 불을 끄지 않아도 내가 전기세 내는 건 아니지만, 쓸데없는 자원 낭비를 막는 것은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귀찮아도 말이다.
애정을 갖고 참여하는 또 하나의 학교생활은 1학년 2학기부터 시작한 학교 도서부 활동이다. 학교 도서관의 책을 정리하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방과 후에 학생들이 책을 빌리거나 반납할 때 사서 선생님을 돕는 일을 하는데, 2년 동안 내내 도서관을 다니다 보니 방학 중 학교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독서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되고, 책 근처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책을 접할 기회도 많아져서 좋은 것 같다. 남의 도서관 같지 않다. 책이 잘못 분류돼 있거나 제대로 꽂혀 있지 않으면 제대로 정리해야 속이 시원하다.
별로 명예롭지도 않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있다. 그건 내가 우리 학교라는 공동체 내에서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공동체는 없으니 그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조금씩 노력해야 한다. 부족함을 보완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직을 위해 어느 정도 개인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래야 권리도 주장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학교 주위 우범지역을 순찰하기 위해 아빠도 한 학기에 두 번씩 대디폴리스에 참여해 야간 순찰활동을 하고 계신다. 바쁘고 피곤하시겠지만 3년째 활동해주시는 아빠가 고맙다. 누군가는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닌 일에도 참여하고 공헌하고 기여하며 살아야 한다. 나도 그 누군가의 참여와 공헌으로 만들어진 일로 혜택을 받아 지금처럼 생활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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