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는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
그에 따라 약도 많아진다.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니까.
나는 진료실에 약통을 준비해 놓고 자주 처방하는 약은 샘플로 준비해서 약을 처방하면서 환자에게 직접 약에 대해 설명한다.
약이 캡슐인지 아닌지,
쪼개서 먹어도 되는지 아닌지,
무슨 약이랑 헷갈리는지 (변비약이랑 와파린이랑 헷갈려서 먹고 INR이 9가 넘어 온 할머니가 계신 뒤로 약을 모양과 색깔로 설명하게 되었다)
이 약은 새롭게 왜 처방하는지,
무슨 증상이 있으면 이 약을 드셔야 하는지,
먹으면서 뭘 주의해야 하는지 그런 설명을 주절주절 하면서 약을 처방한다.
샘플이 준비되지 않은 약을 처방할 때는
컴퓨터 화면으로 약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하얀색에 노란띠 있는 이 캡슐은 속쓰리지 않은 관절염약이니까 하루 두번 드세요' 그렇게 설명한다.
그래서 환자가 자기에게 처방된 약이 몇 가지인지
각각의 약 마다 그 약을 왜 먹고 있는지 알고 먹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우리 환자들은 약이 바뀌면 내가 설명한 걸 바탕으로 이렇게 약 봉투에 약에 관한 설명을 써서 헷갈리지 않게 공부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렇지만
약 가지 수가 많아지거나
연세 많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여서 이런 나의 설명을 제대로 챙길 수가 없을 때
이런 설명을 하면 귀찮아하거나 당황해 하신다.
약은 점점 많아지는데 약 설명이 큰 일이다.
의사가 처방한 의도와 무관하게 외부 약국에서 설명이 달라지는 일도 있고,
내가 꼭 먹으라고 한 약을 필요시 먹으라고 하거나,
내가 필요할 때만 복용하라고 한 약을 정기적으로 드시라고 설명되는 등
말이 잘 안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약국에서 환자에게 약에 관한 설명을 별로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다.
복약지도법이 진료비용에 포함되어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환자의 임상적 맥락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약 설명을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제도적으로 이런 것들을 개선되어야 겠지만
일단 난 하루살이 인생을 사느라 바쁘기 때문에,
환자에게 직접 약 복용법을 교육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환자들은 약에 대해 잘 아는 편이고
당일 처방전을 받아본 후 내가 약을 바꾸겠다고 설명했는데 약 처방이 빠진 경우, 환자들이 처방전을 들고 진료실로 찾아온다. (땀나는 순간이다)
선생님, 아까 진통제 붙이는 걸로 바꿔보기로 하셨잖아요?
선생님, 아까 변비약 바꿔 주신다고 했잖아요?
선생님, 비염 스프레이 하나 준다고 하셨잖아요?
선생님, 손발 저림약 새로 한번 시도해 보신다고 했잖아요? 노란색 뉴론틴 처방 빠졌어요.
외래에서 빠른 속도로 진료보고 설명하고 처방내다 보면, 오더가 빠지거나 지난번 오더가 살아남아 혼선이 생긴다.
암환자들은 매번 증상이 바뀌고 다양하기 때문에
반복 처방 보다는 매번 약을 조금씩 바꿔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방에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설명하랴, 처방 제대로 하랴, 나의 부족함이 크다.
다행히 환자들은 그런 나를 잘 이해해 주지만, 그건 이해받을 문제가 아닌것 같다.
처방과 투약에 대한 정확한 시스템적인 백업이 필요한데...
오늘도 처방이 빠져서 약을 타러 온 보호자가 한명 있었다.
혈전증 때문에 주사를 타가지고 가서 맞는 환자인데,
처방된 다른 약이 워낙 많다 보니, 이 주사제가 아예 뭉탱이로 빠져 있었다.
이건 약국의 오류인것 같다. 약 처방과 관련된 완벽한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할 것 같다.
약 처방이 빠져서 토요일인데 병원에 다시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솔직히 좀 화났어요.
그러셨을 거 같아요.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텐데 그렇지 못해 죄송합니다.
환자분은 괜찮으신가요?
많이 못 드시는거 말고는 괜찮아요. 일주일에 한번씩 가정간호 받기로 했어요.
장운동이 안좋으신거 같으니 먹는 약을 가능한 많이 줄이고, 붙이는 진통제를 **** 방식으로 조절하면서 시도해보세요.
미안하니까, 그냥 여러가지 환자에 관한 설명을 해 드렸다.
보호자도 마음이 좀 풀린것 같다.
나중에는 고맙다고 하고 가셨다.
이게 고마울 일인가.
죄송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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