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206

슈퍼맨을 위한 기도

과거 병력을 정리하면서 한줄 한줄 치료약제를 적고 어디가 나빠져서 약이 바뀌었는지 치료 중간중간 왜 입원했었는지 퇴원요약지를 들춰볼 때 혈압이 떨어지고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고 그 아프고 힘들었던 긴 시간들을 묻어버리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인양 항상 단정한 옷차림과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외래에 오시는 당신. 자꾸 기침을 하니까 불안한 내 마음. 물이 차고 빠지기를 몇 차례, 관을 넣고 빼기를 몇 차례 중간에 수술도 하고 보험이 안되는 비싼 약도 써 보고 약효가 아예 없으면 또 모르겠는데, 약을 쓰면 좋아지고 그러다가 조금씩 또 나빠지고 그렇게 하기를 몇년째 '이제 힘이 들어서요.항암치료를 안하는게 낫겠어요.' 힘들어 하는 환자에게 이제는 피검사 하자는 말도 하기 미안하다. 그래도 한번만 더 피검사 해보자..

통증은 CT보다 예민하다

전이성 암환자의 치료가 효과적으로 잘 되고 있는지, 지금 쓰는 약을 계속 쓰는게 좋을지, 아니면 약을 바꾸는게 좋을지를 판단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CT 로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다. CT에서 보이는 병변의 크기가 몇 퍼센트 커졌는지 혹은 작아졌는지의 기준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총 병변 지름의 합이 20% 이상 커지면 병의 진행으로 판단, 약제를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들이 종종 발생한다. 총 병변의 합이 약간 커지는 분위기인데 20%는 안될 때. 병은 조금씩 조금씩 커져가는 것 같고 - 그러나 '확실히' 나빠진 건 아니고 - 각종 피검사 수치들은 고만고만.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굳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가족들이 보았을 때, 환자 스스로 생각했을 때 컨디션이 좋..

모든 숫자는 나에게서 예외가 되기를

한 보호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환자에게 해당되는 모든 통계적 수치들이 우리 환자에서만은 예외가 되기를 바란다는 바램을 적어주셨다. 나도 그렇다. 환자에게 마음이 갈수록 환자 삶에 굴곡이 많을 수록... 평균보다는 예외에 기대를 건다. 나는 가끔 그런 예외의 환자를 보기도 하니까... 그러므로 함부로 비관적인 미래를 말씀드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의사로서는 별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희망은 중요한 것이지만 의사로서 환자에게 헛된 희망을 주는 것은 더 좋지 않다고 되어 있다. 나는 희망을 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 일단 실력이 좋고 똑똑해야 한다. 항암제를 잘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최신 지견들을 잘 챙겨야 하고 약제의 부작용과 효과를 잘 저울질할 수 있어야 한다..

러시아 환자의 선물

말도 안통하고 환자 상태도 별로 않좋고 간으로 전이된 삼중음성유방암이라 신통한 약제도 없는 상태에서 4차 치료를 받으러 이 비를 뚫고 환자분이 오셨다. 얼굴 표정이 많이 밝고 좋아지셨다. 난 환자 얼굴표정이 밝아지면 마음 속으로 제일 먼저 chemo responsibility 를 떠올린다. 이번 약이 효과가 있나? 독성은 여전히 있어서 양발저림으로 걸음이 편치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 복부 통증도 거의 없고 울렁거림도 잘 견디고 있다고 한다. 말씀하시는 톤과 어조가 달라졌다. 약간 수다스러울 정도이다. 그동안은 아프고 힘들어서 별 말씀도 없을 정도였는데... 물론 난 그 말씀을 하나도 못 알아먹는다. 통역으로 이해한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주섬주섬 - 우리 할머니들 액션과 똑같다 - 러시아 인형이라며 선물을..

표정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자기가 그동안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에 얼굴만 보아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관상이라는 것도 이런 면을 집중 분석/통계적으로 보는 것이니 믿을만 할 것 같다. 난 관상을 전혀 볼 줄 모르지만 환자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한두번 만나서 얘기해보고 얼굴보면 분위기 파악 정도는 된다. 의사로서 나는 환자를 만날 때 어떤 표정을 짓는게 좋을까? 내가 굳이 표정을 짓지 않아도 이미 다 드러나있겠지... 나는 표정에 내 기분과 감정이 드러나는 편이라 종양내과 의사로는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좀 중립적인 표정이 필요한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게 종양내과 의사에게는 좋은 것 같다. 어떤 선배님..

죄책감을 버리고

1년전 유방암 수술. 당시 2기. 4번의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호르몬치료. 높지는 않지만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호르몬제를 복용하면서 수술 후 1년만에 정기검진을 시행하였다. 수술 부위 근처 갈비뼈 한군데에서 재발의 신호가 감지되었다. MRI 상 재발이 맞는 것 같다. 6개월전에는 괜찮았는데... 다른 곳의 전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곧 PET-CT를 찍을 예정이지만 내가 보기엔 임상적 정황상 다른 곳의 전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만약 다른 곳의 전이가 없다면 갈비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고 다른 종류의 호르몬제를 복용하며 경과관찰 할 예정이다. 다른 곳의 전이가 있다면 전이 장기에 따라 호르몬제냐 항암제냐를 결정해야 겠지만, 일단 전이가 된 유방암의 치료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항호르몬..

그녀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퇴원하는 환자가 쪽지를 주고 갔다. 포스트 잇 두장을 붙여서 정성껏 쓴 메모. 점점 몸이 좋아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눈도 잘 보이고 가슴 몽우리도 없어지고 기침도 안하고 잠겼던 목소리도 돌아오고.... 환자는 뇌로 전이가 되어 시력이 흐려졌었고 유방암 수술 한 부위에서도 재발이 되어 유방의 통증이 있었다. 폐로도 전이가 되어 자꾸 마른 기침을 하였고 가슴 속 림프절에도 전이가 되어 그 부위를 통과하는 신경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목소리가 계속 잠겨있었다. 전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몇달간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지내던 그녀가 항암치료 후 자신의 상태가 좋아지는 경험을 하면서 지금의 자기 모습 그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노래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소개해주었다. 인터넷..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60세. 1992년에 처음 유방암 수술을 했는데 1998년에 부분 재발을 해서 수술을 다시 하고 2002년에 피부로 재발을 했다. 10년째 병은 피부로만 나빠지고 있다. 지난 10년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항암제, 갖가지 항암치료를 하셨다. 그동안 병력지를 보니 항암치료를 해서 반응이 별로 없던 적도 있었지만, 반응이 좋아 같은 약제를 꽤 오래 유지하며 잘 컨트롤 되던 시절도 많았다. 호르몬 수용체 양성이라 호르몬 치료도 간간히 해 오셨다. 그러나 이제 종류별 항호르몬제, 항암제를 거의 다 쓰셨다. 10년간의 항암치료... 그런데 세상에 아직 피검사가 다 정상이다. 골밀도 검사를 했는데 뼈 상태도 완전 양호하시다. 병은 여전히 피부에만 있고 내부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피부 병면은 점점 넓..

골다공증치료까지 하라구요?

4기 환자를 치료하며 이런 고민을 하는게 어쩌면 유방암이니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10년도 더 전에 유방암을 진단받고 수술하신 56세 아줌마. 8년전에 재발했다. 폐와 간에. 항암치료를 했더니 반응이 좋아서 CT에서 병이 잘 안보일 정도가 되었다. 이어서 호르몬제를 쓰면서 3년정도 지났는데 다시 재발했다. 다시 항암치료, 반응이 좋아 다시 호르몬제. 이런 식으로 환자는 한번 치료를 하면 효과가가 좋고 꽤 오랜 기간 동안 효과가 유지되는 스타일이었다. 이렇게 항암치료와 호르몬치료가 반복되다 보니 뼈의 질이 나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또 폐경기와 겹치는 기간이라 인위적인 치료가 뼈에 미치는 영향을 상당히 나빴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골다공증검사를 했더니 T=-2.4, 골다공증 진단기준인 -2.5 이니 미치..

뇌 전이

뇌로도 병이 진행되었다구요? 다른데는 병이 없는데 뇌로만 암이 전이되었다구요? 수술한지 1년밖에 안되었는데요? 조금 어지러운 거 말고는 증상도 별로 없는데요? ... ...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한다구요? 나이도 젊은데 방사선 치료하면 바보되는거 아니에요? 저 아직 애들 학교가는 것도 봐줘야 하는데... 우리 뇌 속의 혈관에는 각종 외부의 것들이 뇌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막는 일종의 진입장벽과 같은 구조가 있다. 의학용어로 BBB (Blood Brain Barrier) 라고 한다. BBB 때문에 우리가 치료를 위해 쓰는 약물도 뇌로 잘 전달되지 못한다. 어떤 항암치료를 해서 폐나 간 등 몸 여기 저기에 있는 병은 잘 콘트롤이 되고 있는데 어느날 문득 뇌로 병이 전이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가 쓰는 항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