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206

병원을 옮기려는 환자의 차트를 정리하며

외래를 예습하다가 외래 간호사가 '진료메모'칸-이 환자가 왜 오는지를 간략하게 적어놓는 칸-을 보니 전원 차트복사 라고 쓰여있는 환자가 있었다. 삼중음성유방암이시다. 수술한지 2년이 채 안되서 재발이 되었다. 재발 후 항암치료를 4번 했는데 간이 조금 나빠져서 약을 바꾸었다. 항암치료를 3번 했는데 또 간이 더 나빠져서 약을 바꾸었다. 그리고 또 약을 바꾸어서 치료했는데 2번만에 또 나빠졌다. 삼중음성 유방암이라고 해서 다른 유방암에 비해 약제선택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은 없지만, 재발 후 첫 약제반응이 좋지 않은 삼중음성유방암은 다른 약으로 바꾸어 써도 잘 듣지 않는다. 호르몬 양성 환자는 두가지 약제가 아닌 한가지 약제로 치료해도 효과가 좋고, 때론 먹는 항호르몬 치료만으로도 몇년씩 안정적으..

뭐니뭐니해도 아픈게 좋아져야

환자와 신뢰 관계를 쌓으려면 의사는 태도도 좋아야 하고, 실력도 좋아야 하고, 설명도 잘 해야 하고, 환자의 말도 잘 들어줘야 하고, 환자의 입장과 편의도 고려해서 진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가 지금 가장 불편한 문제를 해결해서 불편한 몸 상태가 개선되어야 의사를 신뢰하게 되는 것 같다. 레지던트 2년차 시절. 환자는 이비인후과 의사선생님이었다. 전이성 방광암으로 미국 유수의 대학병원에서 온갖 종류의 항암제, 신약으로 치료를 다 받으셨지만, 결국 병은 나빠지고 한국에 오셔서 우리 병원에 다니며 보존적 치료만 하고 계셨다. 아프면 진통제, 힘들면 영양제... 오랜 병으로 삐쩍 말랐지만 잘 생긴 의사선생님, 인물이 훤칠하다. 입퇴원을 반복하지만 본인의 힘든 증상이 잘 해결되지 ..

4기 환자에 대한 중환자실 치료

어제 그제, 이틀 사이에 3명의 환자가 인공삽관을 하고 중환자실을 갔다. 한명은 심폐소생술도 했다. 마침 중환자실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환자를 보내놓고 나니, 중환자실에서 날 욕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4기 환자에게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치료를 하는게 맞는건가요? 나를 비난할 것 같다. 나도 평소에 전이성 암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극적인 치료가 반드시 옳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난 왜 중환자실을 보냈을까? 유방암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유방암의 세부 유형 중에는 아주 공격적이고 무슨 치료를 해도 약이 듣지 않고 진행이 빠른 타입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다른 암에 비해 4기가 된 후에도 오래 살고, 약도 많고, 환자들 컨디션도 좋다. 그리고 중환자실 치료를 잘 견디고 ..

왜 이제사 오셨어요....

2006년 전이성유방암을 진단받고 6번 항암치료를 했다. 항암제 반응은 좋았으나 독성이 심해서 6번까지만 항암치료를 하고 중단하였다. 그리고 좀 쉬다가 사진을 찍었더니 약간 나빠지는 것 같아서 호르몬제를 복용하셨다. 2년동안 호르몬약 하나로 병이 진행되지 않고 안정적이었는데 또 조금 나빠졌다. 호르몬제를 바꿔서 드셨다.또 그렇게 2년이 지났다. 환자는 항호르몬제 만으로 4년을 잘 버티셨다. 환자는 호르몬제를 드시다가 작년말부터 병원에 안 오셨다. 오늘 남편분이 외래에 오셨다. 지금 다른 병원에 입원했는데 다시 오고 싶다고. 간략하게 상태를 여쭤보니 많이 않좋은 것 같았다. 다행히 자리가 있어서 입원장을 드렸다. 오후에 환자가 입원하자마자 체크한 산소포화도가 88%다. 산소공급은 마스크로 10 리터이상. ..

그러니까 제가 궁금한건요...

8년만에 재발한 유방암. 오른쪽 폐 조금하고, 뼈에 여기저기 재발했다. 나하고는 처음 만났다. 이전 치료기록을 점검하였다. 재발 직후 했던 6번의 항암치료는 반응은 좋았지만 독성이 심해 항암제를 계속 쓰기가 어려워서 호르몬제로 바꿔서 유지한지 6개월. 오른쪽 다리가 갑자기 아파서 입원하였다. 원래 병이 있던 자리인데, 이번에 찍은 뼈사진 상 조영제 섭취 정도가 증가하였다. 그렇지만 그것 자체만으로 암이 나빠졌다고 보지 않는다. 다른 임상적인 상황과 비교해야 한다. 통증이 있는 부위 MRI를 찍었다. 뼈전이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osteolytic vs osteoblastic 이렇게 구분된다. osteolytic은 골용해성이라고 번역하는데 암세포 때문에 뼈 성문이 녹아버려서 뼈가 약해지고 골절도 생기기가..

가슴에 숨긴 상처

한 3년전부터 오른쪽 유방에서 뭔가 만져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환자는 직감적으로 이건 좋지 않은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병원에 오지 않았다. 남편에게도 아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당뇨 고혈압 그리고 최근의 뇌졸중까지 이미 왼쪽 팔다리는 운동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상태였다. 그래도 환자는 전동차를 구입해서 집안생활, 살림을 해 왔다. 동네 가까운 곳도 다니며 가볍게 장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3년동안 오른쪽 유방의 상처는 점점 커지고 진물도 많이 나고 오른쪽 팔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도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지내셨다고 한다. (아니, 그래 그렇게 몸을 감출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너무 힘들고 기운이 없어 집에서 꼼짝없이 누워있는데 남편이 부인을 부축하다가 유방 상처를 보고는 깜짝 놀라..

간이식은 안되나요?

아무리 환자 성격이 고약해도, 항암 치료를 한 후 병이 좋아진 경험이 한번이라도 있으면 의사를 신뢰한다. 그 의사의 말을 들으면 좋아질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단 한번의 경험이라도 말이다. 좋아진 CT를 이전 CT와 비교해서 보여주면 아무리 사진을 볼 줄 모르는 환자라 하더라도 금방 이해한다. 아이고, 많이 작아졌네요. 그런데 통계적으로,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치료를 했지만 계속 약효가 없고 병이 나빠지기만 하면 내가 아무리 자세히, 친절하게, 이유를 설명한다 하더라도 환자는 나를 믿지 않는다. 병원에도 잘 오지 않으려고 하고 검사를 하자고 해도 잘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치료를 해도 계속 진행하기만 하는 병. 환자는 처음에는 열심히 먹고 운동하고 내가 하자는 대로 잘 따라왔다...

흐린 날씨 흐린 마음

인간은 확실히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몸도 마음도. 정확한 메카니즘은 모르지만 분명 무슨 인과관계가 있긴 있을 것 같다. 햇빛, 바람, 습도 등의 요인들이 내 몸과 마음에 미세한 변화를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 과학적인 기전이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관절염 환자들은 비가 오기 전날이면 관절 내 윤활액과 관절들이 기압의 변화를 미세하게 감지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관절염이 더 심하다고 하지 않던가. 요즘같이 흐린 날이 계속 되니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더 많아진다. 통증이 심해지고 조절되지 않으면 자꾸 자신이 아픈 사람이라는 걸 떠올리게 되고 그래서 비관스럽고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뼈로 전이된 환자들은 욱씬거리는 뼈통증이 조절되지 않으면 특히 더 힘들어한다. 유방암 뼈전이는 비교적 예후가 좋다. 4기..

주치의가 바뀔 때 환자들의 마음

"다음 진료부터는 이수현 선생님이 봐 주실 겁니다." "왜요?" "제가 2년동안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수현 선생님, 아시죠? 작년 한해동안 저랑 같이 유방암 환자 진료를 해 오셨던 분이니 환자분도 잘 봐주실거에요." "선생님 다녀 오시면 다시 선생님께 진료볼 수 있는거죠?" "그럼요." "그런데 제가 그때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까요?" "..." 환자들이 손 선생님과의 마지막 진료 때 나누는 대화이다. 유방암 환자들은 특히나 주치의에 대한 의존성이 높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하면 좋아진다는 걸 경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즉 유방암은 항암제 반응성이 좋은 편이라 한두번의 항암치료만으로도 크기가 줄고, 폐전이로 인해 계속 고생하던 기침도 멈추는 등 증상이 호전되는 걸 경험해 본..

모범환자 2호

젊은 엄마. 처음 진단받았을 무렵 그녀의 병은 아주 험했다. 양쪽 유방과 간. 그리고... 올 초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병이 깊어서 그랬는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피로함과 피곤함으로 환자가 힘들어 했었다. 그리고 병을 진단받고 놀라서, 병에 질려서, 착한 그녀와 그녀 남편은 나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고도 나는 그녀를 집에 보낼 수 없었다. 치료 후 간 기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그러면 위험해질 것 같아서 몇일 더 경과관찰하여 괜찮은지 보고 퇴원을 시킬 정도였다. 그리고 매주 요법으로 치료를 시작하였다. 용량을 적게, 자주 맞는게 그녀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일 것 같았다. 다행히!!! 빠른 속도로 병이 좋아지고 있다. 지금 이시간까지도 계속. 그녀는 퇴원 후 매일같이 내가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