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카레밥

슬기엄마 2012. 10. 13. 00:06

 

 

오늘은

우리 내과부 멘토 멘티 모임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1차 모임을 갖고

병원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면서 2차 모임을 가졌습니다.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

한 녀석이 소주잔을 들고 저에게 옵니다.

저에게 소주 한잔을 따라주며 자기 옛날 이야기를 하네요.

올해 4년차 레지던트인 그.

전문의가 되기까지 얼마남지 않은 어엿하고도 멋진 감염내과 의사입니다.

 

그가 인턴일 때 제가 4년차 레지던트였다고 하네요.

그는 그날

아침, 점심, 저녁을 다 굶고 일하고 있었대요. 인턴 생활이 그래요.

그날 제가 밤 10시 가까이 되는 시간에 편의점에 가서 카레밥을 사 가지고 와서

전자렌지에 밥을 뎁혀서 갔다 주며 먹으라고 했대요.

그에게는 그것이 그날 첫 식사였다고 합니다. 

그 날, 그 밥을 잊을 수 없다고

나에게 소주 한잔을 대접하네요.

나도 왠지 마음이 짠해져서 그가 준 소준 한잔을 단숨에.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저도 그날이 떠오르네요.

전 그때 종양내과 4년차 치프 레지던트. 밤마다 12시 넘어서 집에 들어가는 생활.

제가 밤마다 하는 일은

우리 종양내과에서 임상연구하는 환자들의 CT를 보면서 질병상태를 평가하는 것이었어요.

얼마나 좋아졌는지 현재 약제를 유지해도 되는지 병이 나빠졌는지

그런 중요한 사진을 점검하는 일이지요.

아마 그날도 그렇게 병동 컴퓨터로 CT를 보면서 일을 하다가 아마 지쳐있는 인턴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것 같아요.

 

아이고 이 시간에 이러고 있는 나도 그렇지만

그도 너무 안됬구나

 

아마 그런 측은지심이 들어 병원 편의점에 가서 밥을 사다가

이렇게 사다줘도 뎁혀 먹을 시간도 없을텐데 싶어서 아예 뎁혀서 갔다 주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불쌍하게 일했던 그가

이렇게 근사한 감염내과 의사가 되었군요.

 

대학에서

학생과 레지던트를 가르친다는 것은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될 성 부를 나뭇잎인 그들을

지금 내가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교육한다는 자긍심이 중요한 동기부여가 됩니다.

이들은 나보다 훌륭해질텐데 내가 그들의 선생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자랑스러운 마음.

 

의료/의학의 영역에서

교육은

교과서적인 지식만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저는 부끄러움없는 선생이 되는게 꿈이 아닙니다.

저는 부끄러울게 너무 많은 사람이라 그런 꿈은 꾸지도 않습니다.

다만

나는

항상

그들의 편이 되고

그들의 지지대가 되고

그들의 동료가 되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면 족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한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초상권 침해 관계로 올리지 않습니다. ^^

마지막 파도타기 비디오 클립은 올리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우아하게 참으려고 합니다.

 

멀리 다른 병원 파견나갔다가 오늘 모임때문에 택시까지 타고 신촌에 온 우리 멘티.

저는 그들에게 좋은 선생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