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Physicians' Burning Out

슬기엄마 2012. 10. 21. 16:07

 

어제는

한국 임상 암학회에서 주관하는 두 분과모임의 학회가 있었다.

오전에는 완화의료분과에서, 오후에는 유방암 분과에서 모임을 주관하였다.

 

오전 발표 중

Physician's burnout 이라는 주제로 대구 계명대 박건욱 선생님 발표가 있었다.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의사의 기력소진 정도라고 하는게 좋을까?

 

박건욱 선생님은 종양내과 의사로서 암 환자 진료에 경험이 많은 것은 물론이시고, 통증이나 암환자의 삶의 질에 대해 연구도 많이 하신 중견 연구자 이시다. 평소에 특정 암을 중심으로 의학적인 내용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만 보다가 오늘처럼 다소 소프트한 주제로 발표하시는 것을 처음 보게 되었다.

 

선생님의 발표를 듣는데,

이건 강의를 듣는게 아니라,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함꼐 집단 치료를 받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암환자를 진료하는 우리 모두, 그동안 많이 지쳤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암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의 60% 정도가 소진을 경험하는데, 진료시간이 많을 수록 소진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고, 근무하는 병원의 규모나 암환자 및 다른 환자를 진료하는 비율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한다.

 

과다한 행정업무

응급 환자를 봐야 하는 경우

환자의 사망을 경험하는 횟수

임종 전 치료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환자의 수

이런 요인들도 관계가 높다고 한다.

선생님이 제시하는 여러 논문의 인용 문구를 보면서

나를 비추어 본다.

아마 나만 그런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강의를 듣는 여러 선생님들도 다 비슷한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종양내과로서 갖추어야 하는 미덕과 조건은

좋은 가족구성원, 좋은 배우자가 갖추어야 하는 조건과 정확히 상충된다는 선생님 말씀에

강의를 듣는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의사가 소진을 경험한다는 것은

환자에 대한 따뜻한 보살핌에서 무관심으로

적극적인 동참의 자세에서 자기 소외감으로

치료 과정에 대한 확신에서 불신으로

열정에서 냉소로

자신감에서 열등감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매일 반복되는 진료 환경에서

순간 순간 변해가는 의사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 같다.

 

성취도가 감소하며

술이나 약물 중독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심지어 뜻이 같이 하여 일하는 팀원들 조차도 나에게는 스트레스로 느껴지기도 한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허탈감을 자주 느끼게 된다.

 

솔직히

모든 환자가 임종한다고 해서 느낌이 다 같지는 않다.

돌아가실 때가 되어 돌아가신거다 그렇게 가볍게 보내드릴 수 있는 분도 있지만,

가족만큼은 아니어도 애도의 마음이 크고 나 자신에게 잘못한 것은 없는지 되돌이켜보면서 의사인 나 조차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반복되기도 한다.

 

강의가 아니라 내 심리상태를 분석해 주는 것 같다.

 

선생님은

우리가 다 알고 있지만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몇가지 실천 전략을 제시해 주셨다.

 

1. 충분한 수면 :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면 판단력이 떨어지고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게 된다. 주말 동안이라도 일정하게 충분한 수면을 취할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2. 휴식 : 일상 생활 중에 잠시 틈을 내어 휴식 시간을 가지면 피로감을 덜 느끼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 90분에 한번씩 휴식시간을 내어 가벼운 산책, 차 마시기, 개인적인 전화, 동료화의 사적인 대화, 명상 등 어떤 방법이든지 본인이 하고 있는 일과 다른 일을 하는 여유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외래 진료 중이라면 환자와 병의 상태가 치료에 대한 대화 말고, 개인적인 교감의 시간을 가지면 환자와의 관계도 좋아지고 의사로서의 보람도 더 느끼게 될 것이다.

 

3. 운동과 취미생활 :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 체력이 좋아지는 것 외에도 정신적인 안정감이나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자기가 좋아하고 흥미있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 일상에 지친 심신을 재충전하고 활력을 찾을 수 있다.

 

4. 업무와 개인 생활의 균형잡기 : 진료와 연구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면 개인적으로 중요한 삶의 순간들을 놓칠 수 있다. 그럴 때는 잠시 일을 멈추고 자신의 삶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우선 순위를 재정비 할 필요가 있다.

 

5. 나 만의 공간 가지기 : 업무시간 혹은 휴식 시간 중 잠시라도 혼자만의 공간에 있는 것이 좋다. 야외의 나무 그늘, 연구실의 한 구석 어떤 곳이라도 좋다. 조용히 생각하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

 

6. 책임감 나누기 : 의사는 전지전능한 존재도 아니고 환자들을 완전히 책임질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동료 의사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의견을 구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서 환자를 완치시키지는 못하지만 아프지 않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소중한 하루하루를 웃으며 지낼 수 있게 한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한다.

 

7. 유머 : 나 자신을 위해, 동료를 위해, 환자를 위해 유머는 좋은 것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야 행복해 진다.

 

8. 상실의 슬픔 이기기 : 애도의 과정은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상실의 아픔을 경험하며, 그 사람이 없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소중한 사람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모든 환자에 대해 애도의 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슬퍼하는 가족의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전하거나 환자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전하는 작은 행동을 통해 의사가 느끼는 아픔도 치유될 수 있다.

 

9. 글 읽기와 쓰기

 

10. 철학이나 신학 공부하기 : 암에 대해 공부하기로 결정한 순간, 누구나 철학자나 신학자가 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철학이나 신학에 대해 공부함으로써 매일 접하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암 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되었다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고민하고 힘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사로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며 특권이기도 하다.

진정한 용기와 삶의 경이를 보여주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강의를 들으며

모호했던 나의 감정

내 생활이 조금씩 이해가 된다.

아마 나도 소진되어 있었나 보다.

 

선생님이 제시해 주신 실천전략 중 9번 글 일기와 글쓰기.

어쩌면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내가 때론 할일을 미루고 미친 듯이 책을 읽는 것도

지금의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나 스스로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던 본능적인 활동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제 어제 글을 쓰지 못했다.

마음에 앙금이 많이 가라앉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최소한 나의 심리 상태에 대해 진단을 받은 것 같기는 하다.

진단을 받았고 치료방법이 제안되었으니 

그 지침을 따라 한주를 잘 시작해 봐야겠다.

 

치료가 잘 되어야 할텐데...

소진된 에너지를 잘 채워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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