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최선을

슬기엄마 2012. 10. 11. 23:32

 

 

제가 암환자 진료를 하면서 느낀 것은

환자를 위한 최고의 진료란 의사의 노력이나 능력만으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의사의 처방과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쉽지 않아 저 개인적으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그런데

총체적인 의료행위 혹은 의료서비스의 질은

의사의 진료 행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원하는 시스템과 지원 인력의 노력에 의해 완성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특정 질환보다 암환자가 특히 그런 것 같습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다양한 문제가 치료 중에, 치료 후에, 발생하게 되거든요.

 

 

예를 들면

외래에서 항암치료 중인 유방암 환자, 치료 중 잦은 방광염 증상이 반복되었는데, 이번 치료기간 중에는 방광염이 악화되어 급성 신우신염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정확한 균주를 알기 위해서는 소변검사를 잘 해야 하는데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자연 배설 과정에서 소변을 담으면 깨끗한 소변 검체를 채취하기 어렵기 때문에

넬라톤이라는 작은 고무관을 직접 방광에 넣어 소변을 꺼내는 것이 정확한 검사 결과를 얻는데 필요합니다.

저도 한번 그 검사를 당해봤는데,

그걸 당하는 환자도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 않고

그 술기를 시행하는 간호사도 소소한 검사 준비과정에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정신없이 바쁠 때 처치료도 얼마 되지 않는 넬라톤 소변검사는 귀찮고도 생산성 떨어지는 일인게 속사정입니다.

적당히 핑게를 댈 수 있습니다.

'항암제 치료를 하는 외래 주사실에서 균검사를 하게 되면 간호사에 의한 균감염 전달이 우려된다'

그럴듯한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해주는 검사실도 있어요.

우리 암센터 외래 주사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제가 처방한 어떤 술기라도,

그게 아무리 귀찮고 심지어 이런 오더를 외래 주사실 간호사가 수행하는게 맞는가 싶은 것들도

환자 진료를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 그 처방을 수행해줍니다.

제가 생각해도 미안해서

나중에 찾아가서 인사를 하면

환자를 위해서 당연히 해야죠 하십니다.

환자들은 치료를 받으면서 우리 비좁은 외래 주사실, 그 정신없는 분위기에서 욕도 하고 원망도 많고 짜증도 많이 나겠지만,

지금의 인력 현황과 환경에 비해

실재 간호사들이 애쓰고 노력하는 것을 알게 되면 눈물겨울 정도로 고맙고 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호스피스 활동도 그렇습니다.

(환자와 가족들 입장에서는 속상한 발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의사가 아침 회진돌면서 몇마디 크게 다를 게 없는 말, 청진, 라이트로 눈이나 입안 들여다보기, 몸 여기 저기 잠깐씩 진찰하기 뭐 그런거 말고는 해드리는게 별로 없는 임종 직전의 환자들이 있습니다.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기에도 컨디션이 안 좋은....

이미 가족들과 다 논의하였고

가족들도 환자의 임종 과정을 다 이해하십니다.

아무리 그래도 의료진에게 기대는 마음, 그리고 서운한 마음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호스피스 팀이 그들을 만나

현행 의료보험상 책정되어 있지도 않은 의료수가,

무료로 갖은 노력을 하여 그들의 지친 몸과 영혼을 돌보아 줍니다. 환자마다 가족마다 처해있는 상황이 다른데, 그걸 파악하고 평가하여 거기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 줍니다.

하루 종일 누워있는 어떤 환자에게는 침상에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

어떤 환자에게는 불편한 거동때문에 미용실을 못가니 병원에서 파마를 받을 수 있게,

환자와 마음적으로 멀어져 버린 가족들을 불러 모아 따뜻한 마음으로 화해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 줍니다.

환자의 마음 속 깊은 갈등, 원하는 것 들을 잘 파악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의료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어 환자를 보고 있다면

그들은 그외의 모든 부분을 파악하고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의료진에게도 역으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그들이 있어서 말기 암환자의 임종에 품격이 더해집니다. 나는 감히 우리 병원 호스피스 팀의 활동은 우리나라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보험심사과도 그렇습니다.

환자들은 알 수 없겠지만 종양내과 의사에게 보험심사과 선생님들은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석진숙 선생님, 박미경 선생님 특히나 감사드립니다.)

의사인 내가 처방한 것에 문제가 있다며 심평원에서 진료비를 삭감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에 문제제기를 할려면 소견서를 써서 재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의학적인 것과 행정적인 상황이 충돌합니다.

우리 종양내과 보험심사과 선생님들은

의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의사가 왜 그런 의학적 판단을 하게 되었는지

그 취지를 잘 살려 심평원에 공정한 재심을 요구하기 위해 갖은 서류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사실 때론 나의 실수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든 커버해 주실려고 애쓰십니다.

의학적인 것을 내가 책임진다면 그들은 행정적인 사항을 책임집니다.

의학적인 부분에서 오류와 실수가 발생할 때 그걸 의사의 탓으로 돌리기 보다는 의사의 취지를 살려 환자와 병원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결론을 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나 개인적으로 우리병원 보험심사과에 정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보험 관련 일-의사라면 이 대목에서 누구나 날카로와진다- 과 관련된 메일을 보낼 때도 의사의 일을 최소화하고 의사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게, 기분나쁘지 않게 협조를 구합니다.

 

 

당장 환자의 눈앞에서 생색내기 식으로 드러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직장.

 

우리 병원이 갖는 한계, 충분히 인정합니다.

일하는 사람으로써

당장의 어려움에 불평 불만을 갖기 보다는

그 한계를 극복하고 개선하기 위래 노력하는 것. 저는 여러 과, 여러 파트에서 봐 왔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제 진료가 원할하게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들이 있어서 우리 병원이 더 좋은 병원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여러가지 위기적 상황에 처해 있고, 시스템이 최적의 상태로 안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결국 사람의 힘입니다.

 

저의 진료를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께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 주치의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슬프게 하는 병원 풍경들  (3) 2012.10.18
카레밥  (0) 2012.10.13
얘들아 모두 백조가 되어라  (0) 2012.10.07
'괴물'은 되지 말자  (1) 2012.10.05
후배가 보내준 시  (0) 2012.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