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얘들아 모두 백조가 되어라

슬기엄마 2012. 10. 7. 15:56

 

 

일요일 오후,

문자 메시지가 왔다.

 

'저 홍석인데요, 선생님 병원에 계세요?'

 

나는 2009년 삼성서울병원에서 혈액종양내과 fellow 를 했었다.

연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았던 9년의 시간,

나는 신촌에 익숙한 사람이었는데, 그 모든 것이 낯선 삼성병원으로 가서 임상강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fellow 를 하는 동안 내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지낸 건 내과 1년차들.

서로간에 호흡이 맞건 맞지 않건, 우리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병동제로 배치된 1년차들, 그 사이사이에 내 환자가 숨어있다. 환자가 여러 병동에 흩어져있고 그만큼 내가 contact 해야 하는 1년차들도 여러명이다. 이들이랑 유기적인 communication을 해야 내 환자에게 지장이 없다.

 

혼도 많이 냈고

같이 많이 먹었고

같이 밤도 많이 샜다.

 

오더도 제대로 못 내고, 무슨 말을 해도 말귀 잘 못알아먹고, 힘들다고 징징대고, 일하다가 어느 날 도망가 버리고, 뭐라하면 팅팅 불어가지고 말댓구도 안하고, 정말 속터지는 1년차들이었다. 으이구 못살아. 

그랬던 그들이 4년차가 되어 우리병원에서 열린 알레르기 연수강좌를 들으러 왔다.

홍석이가 전화를 해서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애들아, 일단 기념촬영부터 하자."

"네?"

머리컸다 이거지. 내가 사진찍자고 하니까 매우 어색해 한다.

그러나 난 반가운데 어떻게 허냐.

일단 한컷 같이.

 

그 사이에 이들은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신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주 이뻐지고 의젓해지고 멋져졌다.

어리버리했던 과거의 허물을 벗고 호흡기 감염내과 소화기내과 신장내과 그리고 혈액종양내과를 분과로 선택한 아이들, 이제 날개를 펼치려고 한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려고 하는 순간이다.

 

4년차가 되었는데도 나는 이들을 보니, 얘들아, 그런 말이 나온다. 그땐 그랬지.

얘들아, 이 환자는 왜 그런거니,

얘들아, 우리 무슨 검사 한번 해보자,

얘들아 힘드니?

그렇게 애들 취급했었는데, 이들도 이제 곧 전문의가 되는구나.

 

일부러 전화를 해서 나를 찾아준 홍석이가 고맙다. 기념으로 얼마전 다 읽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을 선물로 줬다. 전문의 시험공부하는 동안 제주도 여행 다녀오라고.

 

 

모두들 반가왔다.

우리가 비록 같은 의국에서 트레이닝 받은 선후배 사이는 아니지만

의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동안 함께 할 일들이 또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떡치며 병동에서 밤샜던 1년차 레지던트 시절을 잊지 말자. 의사로서 각인된 모든 경험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될거야. 그렇게 트라우마를 받으면서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가 되는 거란다.

 

 

 

우리 아이들이 모두 백조가 되어 아름답게 비상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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