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나의 멘티들에게

슬기엄마 2012. 10. 4. 09:02

 

 

올초 나에게는 두명의 멘티가 배정되었다. 내과에서 배정해 주었다.

그들 1년차 때 만나 지금은 2년차가 된 녀석들이다.

스승의 날 어색하게 그들로부터 카네이션과 케익을 선물로 받았고

우리는 두세번 고기를 먹었지만 어느새 나도 그들을 잊고 지냈다.

같이 하는 '일'이 없으니 단순히 알고 지내는 이유로 그들을 챙기는 것이 솔직히 어렵다. 모임 한번 잡기도 어렵고, 그 모임을 잡겠다고 결심하는 것도 어렵다.

심지어 멘티 한명은 논문도 봐줘야 하는데 방치하고 있다.

병원에서의 삶이 나를 한치의 여유도 없이 만드는 게 아닐까 핑게를 대본다.

 

사실 이들 멘티 2명 말고도 친한 레지던트들이 몇 몇 있다.

대개는 같은 파트로 일하면서 정이 든 관계다.

 

내가 먹을려고 싸온 도시락을 대신 매일 챙겨먹었던 놈

환자 조금이라도 안좋아졌다 하면 시시콜콜 전화해서 상의했던 놈

시간만 나면 고기 사달라고 조르는 놈

다른 파트로 가서도 날 보면 맛있는 거 사달라고 조르는 놈

소소한 행사면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 인사를 하는 놈

 

그러고 보니 다 놈이다. 내가 놈만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닌데 어떻게 하다보니 그리 되었네.

여하간 그들과 가끔 만나지만 최근 몇 달동안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내과학 교실에서 멘토 멘티 모임을 한다고 하니, 이제서야 나도 그들의 존재를 떠올린다.

 

 

나와 그렇게 정이 든 놈들 중 몇몇은

우리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 졸업생들도 꽤 있다.

술을 마시고 서로의 속내를 터놓을 정도의 관계가 되었을 때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제가 연대졸업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요. 억울해요. 저 열심히 하는데.

 

그때 나의 대답.

 

세상은 널 차별해. 넌 연대 출신이 아니니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연대 입학할 정도로 시험 성적 안 나왔으니까 연대 못 온거잖아.

그 결과로 차별이 있는거야.

그게 억울해?

세상이 그런거야.

 

이쯤 되면 애들 눈이 동그래진다.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다. 나를 그렇게 안봤는데 어찌 이런 대답을! 하는 표정이다.

 

 

그럼 네가 연대 안 나와서, 후진 인간이니?

 

난 그렇게 생각안해. 넌 안 후져. 넌 너만의 빛이 있어.

그런데 세상은 때론 널 인정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럼 굴복할거야? 너의 빛을 감추어 버릴거냐구?

좀 어려워도 그 현실에 직면해야지.

네가 어디 출신이라는 생각 자체를 무시할 수 있으면 더 좋고.

난 널 믿어.

넌 잘 할 거야.

넌 능력이 있어.

 

우린 그렇게 술잔을 기울였다.

좋은 얘기만 해주는게 선배는 아니니까.

현실은 현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그렇지만 인정한다고

그대로 순응하는 사람으로 살라는 얘기는 아니니까.

 

우리는 서로의 존재가 갖는 취약점, 아쉬움, 섭섭함, 좌절 등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4년차, 3년차가 되어 멋지게 병원을 휘젓고 다닌다.

내 환자 좀 봐달라고 전화하면

아무리 바빠도 직접 와서 봐주고 노티도 해주고 간다. 부탁안해도 follow up도 알아서 해 준다.

난 그들이 너무 멋지다. 너무 고맙다.

 

놈들아, 사랑한다. 더 훌륭하게 커야지. 세상의 차별 따위는 신경쓰지마. 넌 너의 길을 가는거야. 차별, 그따위는 네 힘으로 몽땅 다 날려버리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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