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괜찮아요

슬기엄마 2012. 9. 30. 16:55

 

 

가끔 오랜 친구와 전화합니다.

제가 대학도 여러군데 다니고, 예전에 했던 일도 여러가지라

친구들의 폭이 다양한데,

인사 못 챙기고 연락없이 지내는 친구가 많습니다.

 

오랫만에 연락하는데 이런 전화하게 되어 미안하다는 인사,

혹은

네가 의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말을 인사로 한 후

 

근데, 우리 누구누구가 이러이러한 증상으로 어디어디 병원 갔는데 거기서 뭐라뭐라 했대. 그거 맞는거니? 어떤 거야?

 

글쎄. 내가 주로 보는건 암이라...

 

사실 직접 환자를 보지 않고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코멘트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한두마디 하면, 그는 내 친구니까 내 말을 덜컥 믿고, 자기를 진료한 의사에게 가서 다른 의사는 이렇다고 하던데 왜 당신 의견을 그런거요? 그런 식으로 따지게 되기 쉽습니다.

 

환자는

누구나 하는 프로세스 - 외래 진료 예약하고, 외부 병원 기록 다 가지고 오고, 의사 소견서 가지고 와서, 직접 접수해서 보는 귀찮은 프로세스 - 를 다 거쳐서 보는게 가장 이상적입니다.

아는 관계라고 편의를 봐줄려고 뭔가의 과정을 생략하면, 어긋나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비단 제 친구가 아니라

제 환자의 편의를 봐줄려고 이런 단계들을 뛰어넘다가 오히려 환자에게 더 불편함을 초래했던 적이 꽤 있어요. 그래서 누구나 같은 프로세스, 표준 프로세스로 진료를 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메일이나 블로그로 검사 결과를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것도 제가 고민중입니다.

환자 편의만 생각하면 답변해 드리는게 맞는데,

그런 과정 자체가 의료법에 위반되는 현실도 있고 - 현행 의료법에서는 전화도 인터넷으로 진료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

뭔가가 빵꾸가 나는 오류도 있고

추가 검사나 추가 예약을 하게 될 경우 결국 병원에 다시 오셔야 하는 성가신 문제도 있고

저도 제 개인적인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하루가 끊임없이 진료의 연장선상으로 연결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환자 진료는 표준적인 프로세스 틀 내에서 진료하는 게 책임있는 자세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연휴라서 가족들이 많이 모입니다.

가족들은 제가 내과 의사니까 그동안 병원 다니면서 궁금했던 거, 의사들에게 못 물어본거, 그런 것들을 잔뜩 물어보십니다. 명절의 오후는 주로 건강상담 시간이 됩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어느새 암을 전문으로 보는 의사가 되어서 종양내과 이외의 측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도 많고, 내과 내의 다른 파트, 다른 병원 시스템은 당연히 모르고, 내과가 아닌 다른 과 문제는 진짜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래도 가족들은 저에게 뭔가 믿을만한 정보를 얻고 싶어하십니다.

 

가족인데도

어쩌면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대답하고 신경쓰는 것보다 더 무신경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들어보고 심각하지 않은 것 같으면

괜찮은거 같다고 대답하게 됩니다.

좀 지내보시라고.

운동을 한 시간 정도 하고 나면 양 팔이 붓는다는 시아버지,

머리 두피에 뭔가 좁쌀만한게 도돌도돌 많이 나는데 섬유종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도련님,

슬기한테 한방 먹었습니다.

좀 성의있게 대답하라고. ㅎㅎ

 

 

암튼 명절때 진료 상담, 진료 청탁 받으면 대략 난감입니다. 솔직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