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남편들은 너무 눈치가 없어요 부인 마음도 몰라주고.

슬기엄마 2012. 4. 16. 20:20

 

 

 

1차 항암치료는 무리없이 잘 받으신거 같아요.

첫주에 복통 약간 있었던거 말고는

별로 구토감도 없고 식사도 잘 하시고 안색도 좋고

다 좋네요.

지금 특별히 불편한 증상이 있으신가요?

 

엊그제 부터 머리가 아파서 잠을 잘 못자겠어요.

 

머리카락이 빠질려고 해서 아픈거에요. 두피가 아프신겁니다.

두통에 대해서는 특별히 검사 안할거에요. 앞으로 1주일 후면 다 빠져서 두통도 좋아질거에요.

오늘 2차 치료합시다!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진료를 보던 환자가

머리카락이 다 빠져야 두통이 좋아질 거라는 내 말에

갑자기 눈물이 글썽거린다.

젊은 여자 환자들에게는 머리가 빠지는 것의 상징적인 의미가 큰가 보다.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서 머리를 밀어버릴 때 환자들이 제일 많이 운다고 한다.

 

들으시면 섭섭하시겠지만

저는 솔직히 의사로서

환자분 머리카락 빠지는 거, 별로 신경 안 쓰여요.

그것보다는요

우리 환자가 별로 힘 안들이고 항암치료 받는 거,

구토감없이 식사 잘 하시는 거,

안색 나빠지지 않고 몸 상하지 않고 항암치료 잘 견딘거

그런걸 더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첨 듣는다는 기색으로)

항암치료하면 그런 일도 생겨요?

 

그럼요.

지난 번에 첫 항암제 맞기 전에 교육 안 받으셨어요?

우리 병원에서는 처음 항암치료를 받는 분들에게

코디네이터 선생님이 항암제 부작용 교육, 주의할 사항 그런 거 다 설명드리고 있는데요.

 

그때는 사실 정신이 없어서 뭘 했는지 기억도 안나요.

내가 뭘 듣고 있는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그 분들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관심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았어요.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책자가 남아있으니까 그런 교육을 받긴 받았나 보다 할 정도에요.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고

그리고도 한참 있다가 항암치료를 시작한 건데도,

환자는 충격의 연속이었나보다.

생각한 것 보다 병기가 높게 나와서

처음에는 항암치료를 안해도 되는 줄 알았다가,

좀 있다가는 4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가

결국 8번의 항암치료를 다 해야 한다는 말에,

그리고 방사선치료까지 다 해야 한다는 말에,

시간이 갈수록 치료 범위와 기간이 길어지니 충격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나 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는 컨디션 굿이다.

 

객관적으로는 굿인데

환자의 마음은 아직 지옥이다.

환자의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 객관적인 것 보다.

 

너무 한꺼번에 그 마음을 다 위로할 수는 없겠지.

오늘은 아쉬운 대로 초콜렛만 하나 드렸다.

 

초콜렛에는 세로토닌이 들어있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일단 이거 드시면 기분 좋아질거에요.

그리고 치료 중에 울지 마세요. 한번 울면 마음이 무너질지도 몰라요.

꾹 참고 한두번 치료를 받으면 마음이 단단해질거에요.

 

일단 오늘은 2차 항암치료를 받으시라고.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서는,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아마 시간이 좀 필요한 모양이라고 말씀드렸다.

 

옆에서 무뚝뚝한 듯한 남편이 그런 우리의 지난한 대화를 듣고도 내내 가만히 있는다.

한 마디도 거들지 않고.

에구. 밉상.

겨우 힘 내서

2차 치료를 시작하는 부인에게

화사한 봄꽃으로 선물이라도 좀 하시라는 말이 나오려다 말았다.

 

남편들은 왜 이렇게 눈치가 없을까?

끌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