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저도 애 낳고 많이 울었어요

슬기엄마 2012. 3. 14. 21:36


임신을 하면 유방이 커지고 팽팽해진다. 
환자 스스로 자기 유방에 생긴 멍울이나 이상한 느낌 그런 걸 잘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진행된 병기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임신 중 체내 에스트로젠 농도가 높으니 유방암이 더 빨리 자랄 가능성도 있다.
임신 몇 주냐에 따라 항암치료를 할 수 있는지,
치료적 목적으로 유산을 해야 하는지,
제왕절개를 해서 출산을 먼저 하고 치료를 나중에 할 것인지 그런 치료 방침을 결정하게 된다.
어느 때가 되었든 임신한 유방암 환자를 만나면 나는 초긴장 상태가 된다.

다행히 이 환자는 39주에 진단을 받았다.
유방 초음파 외에는 아무런 검사를 하지 못한 상태라 병기도 모른다.
자연분만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일단 예정대로 출산을 하고 유방암 검사 및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환자는 순조롭게 자연분만으로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한 다음 다음날 외래에 왔다.
잔뜩 몸도 부어있고
환자 몸과 마음이 편치 않아 보인다.
유방을 만져봐도 잘 모르겠다.
원격전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를 CT로 대신하고 당일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환자는 약간 겁먹은 듯 했지만
출산 전에 비해 마음은 다소 여유로워진 듯 했다.

그녀가 첫 싸이클 항암치료를 마치고 2번째 항암치료를 하러 왔다.
예정 시간보다 2시간 늦게 외래에 왔다.
시골에 계신 친정부모님 대신 오늘은 시아버지와 함께.
첫 아기를 낳고 시댁에 있으면서 시아버지와 함께 병원에 오려니 얼마나 어색했을까.
그녀는 내가 항암치료 독성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데 대답이 신통치 않고
별로 말이 잘 안통하는 느낌이 든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독성도 별로 겪지 않고 유방도 많이 말랑말랑해지고 성적은 괜찮아진 것 같은데 환자는 자꾸 오지도 않을 미래를 걱정하며 면역성이 떨어지면 어떻게 할지, 8차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과도한 걱정을 한다. 차라리 자연요법을 하면서 면역성을 회복하는게 어떨지를 묻는데 나는 정말 욱 하고 말았다.

그동안 이렇게 진단받고 자연요법 하다 오신 분들중에
치료 된 사람 한명도 못 봤고
항암치료하고 수술하면 완치될 수 있는 사람들이 다 전이되서 나타나서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그냥 돌아가시는거 저 너무 많이 봤습니다.
나이드신 할머니도 아니고
이제 애도 무사히 낳았고 열심히 치료하면 완치될 수 있는 젊은 사람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는거에요?
그럴 말씀 하실거면 저한테 오지 마세요.

나는 빽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화가 막 났다. 그런 사람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놈의 자연요법.
환자가 울기 시작한다.
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그녀가 출산 후 시댁에서 몸조리하고
엉겹결에 항암치료까지 하고 있는 힘든 마음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
...

저도 애 낳고 많이 울었어요.
원래 출산 후 우울증이 있어요. 보통 2달까지 갑니다. 특별한 대책은 없어요. 

아이가 밤에 자꾸 깨서 우는데 우유먹이고 달래는게 너무 힘들어요.

그래, 그녀는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시아버님께 부탁한다. 

항암치료 하는 기간만 아이를 맡아주세요. 환자가 아이를 보지 않고 편히 쉴 수 있게요. 환자 기운이 날때 아이랑 가볍게 노는 정도로 지원해주시고, 평소에는 다른 분들이 봐주세요.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자지 않게 시어머니나 시아버지가 봐주세요. 며느리 친정에도 보내주시구요. 

눈물을 닦고 난 환자랑 나는 손가락 약속을 하였다.
다시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힘든건 얘기하고, 그리고 8차까지 항암치료 잘 해서 수술하자고.
환자도 쑥쓰러운 듯 약속하며 항암치료할 때 주의사항을 다시 한번 묻는다.

환자가 힘들었었나 보다.
소리지른게 미안해진다. 이놈의 성격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