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항암치료 한번 마칠 때마다 전리품을 챙겨주세요

슬기엄마 2012. 3. 4. 20:23

난 사실 매번 똑같은 설명을 하지만
내 설명을 듣는 환자와 가족은 생전 처음 듣는 설명이기 때문에
너무 재미없게, 무기력하게 설명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프로 배우처럼 하고 싶다.
의사의 설명은 같은 역할을 수백번 연기하는 배우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무대에 선 배우는 프로다.
그는 이번 공연이 마치 처음인 것처럼 신선한 마음을 가지고 관중을 만나고 무대에 오른다.
나도 프로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지.

수술 전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두명의 환자가 입원하였다.
사실 굳이 입원해서 진행할 필요는 없다.
요즘은 항암치료의 부작용을 보조하는 약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적절한 교육을 하고 항암치료를 받고 돌아간 후 해피콜을 해서 환자 상태를 확인하면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나는 첫 항암치료를 하게 되는 환자를 짧게 이박삼일 정도 입원시킨다.
교육과 설명 때문이다.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환자라면
표준치료에 더하여 임상연구의 의미까지 충분히 공유하고 진행하기 위해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
외래에서 그 설명을 다 했다간 외래 마비다.
요즘은 설명의 의무도 강화되고, 임상연구는 연구자 책임이 날로 늘어난다. 환자를 위해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되지만 의사가 할 일은 점점 많아져서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난 외래의 시간압력을 못 견디기 때문에 입원을 시키는 편이다.

첫 항암치료 때 가능한 최선의 설명을 다한다.
설령 환자가 그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나에게 물어보게 되는 한이 있어도
의사와의 첫 만남에서
환자가 자기가 받는 치료에 대해 이해하고, 자기 주치의를 신뢰하고, 앞으로 치료 일정을 예상하며 스스로 마음가짐을 다잡는게 항암 치료과정을 무사히 잘 보내는 관건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 설명시간에 가능한 가족들도 다 참석시킨다.
아들, 딸, 며느리, 남편의 입장에서 우리 환자는 어떤 치료를 받게 되고, 나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환자를 지지하고 도와야 할지 지침을 준다.
특히 남편에게 당부한다.
앞으로 최소한 1년-2년 동안 환자를 위해 평소에 안하던 집안일도 해 주시고, 보이지 않게 배려도 많이 해주셔야 한다고 부탁드린다. 그 자리에서 역할을 정한다. 설겆이면 설겆이. 빨래면 빨래. 청소면 청소. 남편이 자신의 역할을 하나 선택한다.
그리고 항암치료 한번 마칠 때마다 환자에게 잘 견뎠으니 기념 선물을 하시라고 명령 겸 부탁을 한다.
꽃도 선물하시고
목걸이도 선물하시고
영화도 같이 보시고
그렇게 한주기 한주기 무사히 마칠 때마다 치료를 잘 견딘 환자에게 전리품을 챙겨 주시라고.
오늘도 아저씨랑 손가락 걸고 약속하였다.
환자 얼굴이 환해진다.

항암치료, 너무 힘들게 받지 맙시다. 항암치료 하다가 더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