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삶의 철학을 전환한다는 것은

슬기엄마 2012. 6. 14. 23:01

삶의 철학을 전환한다는 것

 

우리 암환자들은 먹거리에 대해 지극히 관심이 많지만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단지 좋은 건강보조식품에 집중한다고 해서 암의 예방하거나 면역력이 증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외래에서 환자들과 하는 대화 중 70% 이상은 먹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전 그런 질문을 하실 때 딱 잘라서

그건 드시지 마세요

그렇게 강하게 얘기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마음 속으로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몸에 좋은 그 무언가를 찾아 그걸 열심히 먹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균형잡힌 식단을 짜서 음식으로 드시는 것이 가장 좋다,

식단을 바꾼다는 것은 단지 음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것인가 삶의 철학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도 압니다.

 

식단을 바꾸고 그것을 장기적으로 꾸준히 실천한다는 것은

개인 삶의 철학을 반영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걸 백퍼센트 확신하지만

또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압니다.

저도 매우 불규칙한 식사, 일품식단, 대충 때우기, 아무때나 군것질하기, 시도때도 없이 커피 마시기, 아무때나 맥주마시기 그런 것으로 몸을 망가뜨리고 엉망진창인 삶의 철학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오늘 충격을 받았습니다.

삶의 철학을 바꾼 멋진 환자를 만나서.

 

그는 수술하고 항암치료하고 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너무너무너무 힘들어하던 환자였어요. 나이도 많지 않은데 심하게 힘들어하는게 이상했어요. 몸무게가 너무 많이 감소해서 분명 다른 병이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기운도 없고 각종 힘든 증상이 나타나는데 검사하면 다 정상이고 환자가 힘들어해서 입원시켜 검사했지만 나오는 건 없고 증상은 호전되지 않고 정말 의사인 저로서도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여차저차 그는 퇴원을 해서 지방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정작 나는 그를 위해 해 준 것도 없고 건강 상태를 호전시키는데 도움이 안되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렇게 그는 돌아갔고, 나는 흐지부지 그를 잊었지요.

 

그가 오늘 외래에 왔습니다.

유방암 정기검진을 했는데 결과는 특별한 이상없이 좋았습니다.

살도 좀 찌고 얼굴 표정도 밝아졌어요.

저는 너무 궁금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그는 몸에 좋다는 별걸 다 해봤다고 해요.

자기만의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 운동, 식단, 보조식품 그런 것들을 수도 없이 시도했다고 해요.

그러다가 자신에게 맞는 것이 단전호흡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이사해서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서 밤 열시에 자는 생활을 규칙적으로 하였습니다.

건강보조식품은 다 끊고

자연에서 나오는 음식 그대로 식단을 짜서 드셨대요.

본인이 농사지은 음식을 주로 드시구요.

몇일전 천년초를 심었다며 (그것도 먹는 건가 봅니다) 자랑하였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시간을 많이 보내기로 했대요.

그는 약초로 고운 색상을 내서 만든 한지부채로 특허등록을 하였더군요.

그 부채를 저에게 오늘 선물로 주었습니다.

부채 선물은 좋은 거라며.

선생님에게 좋은 기운과 복이 오길 바란다며.

 

잘 걷지 못할 정도로 힘없고 비실거리고

또 너무 힘들어서 울고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정신과 진료가 필요했어요.

그녀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저로서는

이렇게 좋은 부채 선물을 받아도 되는지 송구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녀 스스로 찾아낸 자신만의 행복찾기.

많은 걸 버렸지만 더 많은 걸 얻었다며 웃는 그녀.

정말 힘든 기간을

잘 이겨낸 용감한 슈퍼맨입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나의 환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용감 씩씩한 분들을 보며

제 자신을 돌이켜보며 아직 그런 존재가 아닌 나, 그러나 그런 깨달음을 주는 환자들이 있으니 나도 변화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