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검사 일정

슬기엄마 2012. 3. 21. 14:23

4기 유방암이지만
치료 효과가 안정적으로 나타나면서
2년째 3년째 같은 약으로 치료받는 환자들도 꽤 있다.
처음에는 CT를 찍을 때마다 마음 졸이고 불안했지만
(물론 검사 후 결과를 듣는 심정은 아무리 시간이 흘렀더 하더라도 언제나 떨리고 불안하기 매 한가지이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상당히 관록이 붙었다.
의연하다.
마음도 강건해진 탓도 있겠지만
약효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고 자기 삶이 더 이상 균열되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짐작해본다.

항암제 치료를 하면서
그 치료의 효과를 확인하고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
상황 별 가이드라인도 있고
의사의 성향도 있고
환자별로 특수한 상황도 있으니
언제 검사를 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이냐에 일관된 답은 없을 것이다.
나는
항암제를 쓰는 환자는 3주기(1주기를 3주로 보면 9주에 한번),
항호르몬치료를 하는 경우 3달에 한번 (호르몬 치료는 4주를 한주기로 하니까) 종양평가를 위해 CT와 피검사를 한다.
재발 이후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그동안 검사를 많이 한 환자들. 그래서 조영제 CT를 찍는게 부담스러운 환자는 조영제를 쓰지 않고 CT를 찍기도 한다. 사실 조영제를 써야 병변이 정확하게 잘 보이고 조영증강이 되어 여러 감별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상태가 안정적인 환자들은 병이 새로 생겼는지 아닌지, 병이 나빠졌는지 좋아졌는지 정도만 판단하려고 조영제를 안 쓰고 CT를 찍는다. 그럴려면 나도 환자의 상태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

나는
4기 유방암 환자를 볼 때
종합피검사도 가능하면 자주 안하고 최소피검사로 대체하며
CT도 가능하면 자주 안 찍고
최소한으로 검사하고 최대한 힘들지 않은 치료를 오래 할 수 있게 노력한다.
물론 유방암 환자 중에서도 공격적인 속성을 보이는 타입을 갖고 있으면 항암치료 2주기만에 검사를 반복하기도 하고 종합 피검사도 자주 한다. 다른 암 환자에 비해 유방암 환자들은 다른 피검사에서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고 대체적으로 신체 컨디션이 좋기 때문에 집중적인 검사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경우가 많다. 물론 검사 안하고 놓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들지 않는건 아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자세히 묻는다. 불편한거, 어디 달라진거 없냐고. 임상적으로 의심이 될 때 검사를 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검사를 안하면 솔직히 후달린다.

그렇게 검사를 안하려고 노력하는 나에게
더 검사를 안하겠다고,
몇년째 상태가 똑같은데 왜 자꾸 검사하냐고 항의하는 환자와 가족들이 있다.
환자들과 communication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환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비교적 할 수 있게 시간과 여유를 허락하려고 노력한다.
환자들의 건의, 불편사항, 제안사항을 많이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검사를 하고 말고의 문제
약을 쓰고 말고의 문제
이런 처방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그 권한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의사에게 그 권한을 침범하는 발언을 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또 다시 한번 욱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나의 심정을 잘 모르고
나를 편하게 대하는, 형편이 어려운 할머니들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알만한 사람들이 그러면, 나는 외래 시간 지연을 무릅쓰고 다 설명한다.
오랜 투병생활에서 가능한 검사를 안하고도 안전하게 치료를 잘 유지할 수 있게 최소한만큼만 검사하고 있다고. 그래서 나는 너무 검사를 안해서 내 수익율은 우리 병원 의사 평균 수익율의 반밖에 안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이나 검사, 치료지침, 점검 등에 관한 처방은 의사가 자신의 전문성과 직업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환자가 원한다고, 보호자가 원한다고 그 말을 따를 수는 없는 거라고. 제가 저의 원칙대로 진료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못을 박는다.
그러니까 제가 검사하자고 할 때는, 검사 받도록 하셔요

환자 얼굴 붉히지 않으면서도, 혹은 얼굴 붉히는 일이 생기더라도
원칙진료, 소신진료를 하는 의사가 되라고
한 선생님이 충고해주셨다. 그 말씀을 따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