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잠시 병원을 비웁니다

슬기엄마 2012. 3. 27. 20:46

잠시 병원을 비웁니다

 

연구자 미팅이 있어 3일간 로마에 다녀옵니다.

비행기 타고 왔다갔다, 중간에 갈아타고 기다리는 시간을 합하면

정작 회의를 하는 시간보다 훨씬 길지만

그렇게 관련 미팅에 참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리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약제가 제공된다는 측면도 있고

우리 병원이나 우리 과의 입지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되어

출장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목금토 병원을 비우니

그 동안 환자 퇴원 및 치료 계획을 잘 세우고

제가 없는 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환자들이계획 대로 일정이 잘 진행되도록,

특별히 문제가 안 안생기도록 미리 단속을 해야 합니다.

다행히

지금 저와 함께 일하는 전공의 선생님이

아주 실력이 좋고 환자를 잘 보는 의사선생님이기 때문에

별 걱정은 안합니다.

 

출장 가기 전

오늘 저녁에는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가족 면담을 하였습니다.

임종이 예상되는 환자 가족을 만나 나 없는 사이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심폐소생술을 안했으면 좋겠다는 말,

이제 처음 난소암을 진단받고 오셨는데 연세도 너무 많으시고 증상 완화를 위해 쓰는 약이 약효보다는 부작용으로 더 강하게 작용하여 고생하시는 할머니의 가족에게는 더 이상의 진단과 치료 절차를 밟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는 말. 가능한 최소한 약을 써서 아프지 않게 조치하면서 요양병원으로의 전원을 준비했으면 좋겠다는 말.

간경변이 있으신 분이라 재발된 난소암에 대해 항암치료를 하기가 부담스럽고 이후 간경변의 악화가 예상된다는 말.

새로운 임상연구가 있는데 어떠어떠한 면에서 환자분께 유용성이 있으니 한번 생각해 보시고 진행했으면 한다는 말.

아직 조직검사 결과가 확정되지 않아 치료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환자에게 이제까지의 경과와 앞으로 예상되는 치료 계획을 설명하는 말.

환자가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설명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그런 말들을 전하고 왔습니다.

매번 학회를 갈 때, 외국 출장을 갈 때, 그 전날 마음이 심란합니다.

그래서 매번 가지 말걸 그런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잘 다녀오겠습니다.

보고하고 다녀와야 할 것 같아 몇자 적었습니다.

부디 모두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