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다른과로 협진 보내기

슬기엄마 2012. 3. 15. 17:17

종양내과 외래를 다니는 환자들은
몸이면 몸, 마음이면 마음, 온갖 군데에서 문제가 생긴다.
어떤 것은 과감하게 내 선에서 해결해야 하고
어떤 것은 소심하게 다른 과 협진을 봐서 의견을 듣고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종양내과 의사는 잡 지식이 많아야 한다. 꼼수로 해결해야 하는 것도 많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다 검사하려고 들면 끝이 없다. 그런데 꼼수부리다 큰 일 나는수가 있다. 그래서 매일 살얼음판이다.

손발이 저려서 걸음도 제대로 못 걷겠어요
     단추 잠글 수 있어요? 젓가락질 제대로 되요? 한번 걸어보세요.
     항암제 용량을 좀 줄이든지 약을 쉬든지 해야겠네요.
     (항암제 반응은 좋은거 같은데 그만 해야 하나? ㅜㅜ)

입안이 헐어서 밥을 못 먹겠어요
     아 해보세요. 이구 궤양이 생겼네요. 가글 열심히 하시구요, 곰팡이 약을 좀 먹는게 좋겠어요.
     (이제 겨우 한번 했는데 입안이 이 모양이네. 앞으로 매번 어떻게 하지?
      충치도 있고 잇몸도 아프다고 하는데 치과를 먼저 봤었어야 했나? ㅜㅜ)

손끝 발끝이 다 갈라졌어요. 발톱이 빠질 것 같아요
     (사진을 찍으며) 스테로이드 연고 드릴께 발라보세요. 
     발톱이 살을 파고 들어가니 피부과 선생님을 봐야 겠어요.
     (이정도는 갈등의 여지 없이 피부과로 보내면 되는데...)

피부가 모두 벌게졌어요. 여기는 예전에 안그랬는데 뭐가 도돌도돌 나는거 같아요.
     피부과 선생님 진료보고 필요하면 피부조직검사를 합시다.
     (약 부작용인지 피부전이인지 헷갈림)

몇일 전부터 너무 어지러워요. 가끔 머리도 아프고.
     언제부터 그래요? 심한가요? 몇일에 한번씩 아파요? 타이레놀 드셔 보셨어요? 
     (항암제 부작용인지 뇌 전이인지 알 수 없음) 
     (병원 온 김에 찍어야 할지, 좀더 경과관찰 해야할지 판단이 안섬)

소변 보는게 힘들어요. 그쪽이 다 가려워요
소변에서 자꾸 거품이 나는거 같아요.
      소변 검사 한번 해봅시다.
      (이런 건 검사비용도 안들고 환자도 안 힘들고 
       심각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처방!)

변비가 심해요.
       (이건 나의 전공이니까 자신있게 약 처방 및 환자 교육)

설사 때문에 밥 하나도 못 먹고 완전 탈수 되었어요. 
       (이것도 나의 전공이니까 자신있게 설명하고 약 투약법 교육하면 됨)

항암제 맞고 나니 눈물이 너무 많이 나요.
       네 눈물샘이 막혀서 그래요.
       참을 수 있으면 참아보고 맨손으로 눈물 닦지 말고 정 답답하면 안과봅시다.
       눈물샘을 뚫어주면 좋아져요
       (뚫는다는 표현이 과격한지 환자들 100% 참겠다고 함)

항암제 맞고 귀가 멍 해요.
       (씨스플라틴 맞으면 이명이 온다고 되어 있으니까 약을 끊어야 한다. 탁솔도 좀 이명이 올 수 있
        는데 탁솔의 독성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니까 좀 쉬면 된다)

온 관절과 삭신이 쑤시고 아파요.
         진통제를 좀 바꿔 볼께요.       
         (항암제 때문인지, 전이 때문인지, 난소억제때문인지 원인이 헷갈리지만
          아픈 환자들은 의사가 이런 저런 설명을 해도 일단 몸이 아프기 때문에 성가지고 짜증을 낸다.
          아픈게 해결되지 않으면 진료실에서 불평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내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은 대부분 아프다.
          아픈걸 잘 못 잡아주면 의사로서 신뢰가 떨어지는것 같다.)
 
협진을 보내면
한달 뒤에 외래 및 검사 스케줄이 잡혀서
그 사이에 내가 두번 정도 항암치료를 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빨리 해결이 안되면 나는 소견서를 써서 환자를 동네 병원으로 가게 한다.

나는 당일 접수로 다른 과에서 의뢰된 모든 환자를 받는데
우리 환자들은 다른 과에서 당일로 문제 해결이 안되고 떠돌아 다닌다. (당일 접수는 의사의 피를 말리는 힘든 제도이지만 환자에게는 필요한 제도다.)

대학 병원에서 다른 과로 협진을 내면
문제 해결은 제대로 안되고
무슨 검사만 잔뜩 하고 환자에게 그 과적인 설명도 제대로 안해주는 등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협진 환자까지 열심히 보는 것은
대학 병원 의사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꼼수를 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