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뼈 건강을 체크해야 하는 이유

슬기엄마 2012. 4. 7. 15:25

 

 

나는 시간이 나는 주말이면 연대 안 안산에 등산을 다닌다. 등산이라고 하기엔 산책보다 약간 힘든 정도의 가벼운 운동이지만, 그래도 안산은 봉수대라는 이름의 근사한 봉우리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 봉화대로 사용되던 곳이라는 지형적 특징 때문인지, 봉수대에 오르면 서울 시내가 제법 한눈에 잘 들어온다. 일년에 서너번 정도, 비온 후 맑은 서울의 하늘은 절로 감탄사를 터뜨리게 한다.

햇빛을 받고 오르는 길, 땀 흘리며 내 힘으로 땅을 박차고 한걸음씩 산을 오른다. 햇빛, 땀나는 운동, 중력을 이기는 운동은 뼈를 튼튼하게 하고 골다공증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얼굴이 좀 검게 타더라도 나는 썬블럭 크림을 바르지 않고 얼굴을 햇빛에 노출시킨다. 여름에는 가능한 짧게 반팔을 입고 허연 내 팔뚝이 햇살을 받게 해준다. 비타민 D는 햇빛을 받으면 체내 합성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난 그래서 폐경기 전후 여성들에게는 햇빛을 쬐면서 땀 흘리며 등산을 하시라고 권하는 편이다. 햇빛을 받으며 멜라토닌이 합성되면 폐경기 증상을 완화시키는데도 도움이 된다.

 

그렇게 오르는 안산 등산길. 가끔 환자들을 만난다. 좀 어색하지만 눈인사를 하고 지나친다 그렇게 만나던 환자 중 일흔이 넘었지만 젊은이 못지 않게 열심히 등산을 다니시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전립선암, 위암 2관왕이었다. 그리고 수술, 방사선치료, 항암치료 다 열심히 받으시고 지금은 추적관찰 중이다. 위암 수술 후 생긴 비타민 12 부족으로 한달에 한번씩 내 외래로 오셔서 비타민 주사를 맞으신다. 비타민 주사는 집 근처 병원에서 맞으셔도 된다고 했더니 집이 세브란스병원 바로 옆이라 우리 병원 다니시는게 젤 편하다고 하신다. 한달에 한번씩 주사맞게 처방해 드리고 외래 진료는 6개월에 한번만 봐도 된다고 했지만, 병원에 왔는데 어떻게 선생님 얼굴도 안 보고 그냥 가냐면서 매달 한번씩 외래에 오신다. 외래오시면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운동하는지, 얼마나 건강한지 자랑하느라 한참 수다를 떨고 가신다.

 

그랬던 할아버지가 지난 12월 말 눈길에 넘어지셨다. 고관절 골절로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으셨다. 그리고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아 재수술을 한번 하셨고, 석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신다. 걸음걷기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신다. 암을 두번이나 이겨내신 분, 일흔이 넘었지만 얼굴 피부도 좋고 활기가 넘치시던 분, 각종 운동 열심히 하시고, 건강을 장담하시던 분, 그런 분이 골절 이후 화장실 가는 일도 자기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장애가 생기고 나니, 순식간에 늙으시는 것 같다. 얼굴에 윤기도 없고 순식간에 허벅지도 얇아졌다. 몸집이 순식간에 작아져 버렸다. 골절이 암보다 더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EMR을 리뷰해보니 내가 할아버지 골다공증 검사를 한 적이 없다. 위암, 전립선암 재발여부를 확인하는 스크리닝 검사만 하고 있었다. 유방암 환자들은 폐경을 전후로 골다공증이 오기 마련이고, 호르몬제를 먹으면 뼈가 약해지기 때문에 골다공증 검사를 챙겨서 하는 편인데, 남자 환자는 검사여부에 대한 특별한 기준도 없고, 할아버지들은 무슨 검사만 하자고 하면 매우 귀찮아 하시기 때문에, 나도 그냥 넘어갔던 것 같다.

 

어르신들은 몸에 무슨 위험 싸인이 왔을 때 그걸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저장고(reservoir)가 없다.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위기가 초래된다. 그게 노인 환자를 진료할 때 꼭 명심해야 하는 원칙이다. 의자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거나,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삐끗 넘어지거나, 화장실 가는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면서, 조금 부주의했을 뿐인데, 일단 골절이 생기고 나면 컨디션이 악화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어르신들,

비타민 D도 먹고

칼슘도 먹고

해조류도 열심히 먹고

우유도 마시고

햇빛도 열심히 쬐고

중력을 거스르는 운동하기 : 걷기, 달리기, 등산하기

정기적으로 골다공증 검사하기

 

그렇게 골다공증이 오지 않게 검사하고 예방합시다.

골절로 자리에 눕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몸이 약해지고, 간병인이 필요하게 됩니다. 내 몸을 내 맘대로 건사하지 못하게 되는거에요.

그러니까 몸 열심히 움직이고

칼슘제 드리면 열심히 드세요.

 

(그런데 이 글을 쓰고 보니 어르신들은 블로그를 안 보신다는걸 깨달았다. 그런 어르신을 모시고 있는 젊은 분들에게 대신 부탁드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