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339

독백이 아닌 대화의 어려움

친구끼리도가족끼리도멀리서 보면 다정하게 대화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가까이 가보면 그들의 이야기는 대화가 아니라 서로 자기 얘기만 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나대로 내 이야기를 쏟아 놓고상대방은 상대방 대로 자기 이야기를 쏟아 놓고 있다.사실 각자 독백을 하는 건데 같은 공간에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게 대화냐, 독백이냐? 그렇게 말하고 웃는다.그렇게 웃을 관계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진심을 다한 대화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이성적 준거에 의한 의사소통을 잘 하는 일 조차 생각보다 쉽지 않다.대화는 어쩌면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은 적이 있는 환자들은 우리 병원에 올 때그 병원에서 치료받은 의무기록과 검사결과들을 가지고 온다..

제가 외판원은 아니구요...

의사의 의료행위는급여가 되는 항목과비급여가 되는 항목이 정해져 있습니다.그렇게 정해져 있는 항목 이외의 어떤 처방이나 의료행위는 다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환자가 심평원에 민원을 제출할 경우 해당 진료비를 환자에게 모두 다 환급해 주어야 합니다. 사안에 따라 벌금을 내는 경우도 있는것 같습니다.그런 항목을 '임의비급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절대 임의비급여로 치료하거나 약을 쓰거나 검사하면 안됩니다.그건 불법이 되는 셈이니까요. (대표적인 사건으로 소아 백혈병 치료 중 사용한 백혈구 생성 촉진제를 임의비급여로 과다하게 사용했다며 민원을 제기한 서울성모병원 사건입니다. 그 사건을 보며 비슷한 환자군을 진료하는 의사로서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절대 소신대로 진료하지 말고 법대로 진료해야 겠구나 그런 생..

그녀에게 들리는 소리들

나보다 두살 젊은 자궁경부암 환자.폐전이가 있다.그런데 아주 조금 있다.그래서 아무 증상이 없다.폐전이가 발견된 후 항암치료를 했는데 효과가 없고 오히려 약간 크기가 더 커졌다. 많이 커진건 아니고 3mm 가 5 mm 가 된 그 정도다. 그런 점들이 몇개 안된다. 그 상태에서 내 외래를 처음 방문하였다. 이미 표준 항암제는 다 사용한 다음이다. 지금 특별히 불편한 증상이 있으신가요?혹시 빨리 걸으면 숨차거나 가슴이 답답한 증상 같은게 있나요? 없다고 한다. 그럼 한달만 더 쉬다가 다음 치료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사실 지금 써볼만한 좋은 약이 없어요.특별히 몸이 힘들게 하는 증상이 없으니 일단 좀 쉽시다. 지금 어디 아픈 데도 없는데 암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계속 항암치료만 하면서 살 수는 없어요.몸도 좀..

환자들이 종양내과 의사에게 듣고 싶은 말 BEST 4

+++++++++++++++++++++++++++++++++++++++++++++++++++++++++++++++++++++++++한국 임상암학회는 1년에 4회 소식지를 내고 있는데'의사로서의 블로깅'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써 본 글입니다. 진부한 소개글은 쓰고 싶지 않아조금 형식에 변화를 주어 다음과 같이 써 보았습니다.Copyright 는 저에게 있으니 Embargo 같은 것에 걸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ㅋㅋ+++++++++++++++++++++++++++++++++++++++++++++++++++++++++++++++++++++++++ 환자들이 종양내과 의사들에게 듣고 싶은 말 Best 4 : 블로그에 올라온 환자의 댓글 분석 암 치료 중인 환자들은 담당 의사에게 어떤 말..

나도 단풍이 되고, 낙엽이 되고...

마음은 히말라야 트랙킹으로, 산티아고 800km 길로 향하고 있지만 몸은 늘 병원 뒤 안산에 머물러 있다.그래도 사시사철 이런 산을 곁에 두고 오를 수 있으니 이게 어디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이번 가을은 특히 그렇다. 몇일 전 찍은 사진,같은 산등성이에 모여있는 같은 종류의 나무들인데도왼쪽 나무는 아직 푸르게 오른쪽 나무들은 빨갛게 물들어 간다. 머리꼭대기는 아직 초록빛이 남아있지만...누구는 좀 빨리누구는 좀 느리게그래도 지금 자기가 내뿜고 있는 색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오늘 오후 1시간쯤 짬이 났다. 간단하게 빵으로 배를 채우고 안산에 다녀왔다. 한 나무인데도아래쪽과 윗쪽의 색이 다르면서도 형형 색색 조화롭다. 그런 나무들이 지붕을 이루는 가을길. 따뜻한 가을 햇살이 비춰질 때 더 온화한 느..

내 인생에 소중한 것

다른 병원에서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시는 한 선생님,잊을만하면 한번씩 좋은 글을 보내주신다.병원 외부 회의에나 가야 만나뵐 수 있는 선생님이지만학교 후배도 아니고 병원 의국 후배도 아닌 내가 이래 저래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이 되면격려차원에서 좋은 글 때론 야한 이야기를 보내서 웃음을 주신다. 얼마전 받은 글.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rs1026&logNo=50180443753&categoryNo=0 블로그로 공개되어 있는 글이니옮겨도 될 것 같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두 손에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조금이라도 더 움켜쥐려고 욕심을 부린다.내 삶은내 뜻대로, 내 의지되로 되는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갖지 ..

오늘 유방암 생존자/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강의

오늘은우리 병원 유방암 클리닉에서유방암 진단 후 급성기 치료를 마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강좌를 개최한 날이다. 급성기 치료를 마치고 추적관찰 중인 그들을 어떻게 지칭할 것인가? '환자'라는 표현보다는외국에서는 'Cancer Survivor', 우리말로 하면 '암 생존자'라고 번역되는데, 생존자라는 표현보다는 '암 경험자'가 더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이들은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유방암 치료를 일단 끝낸 분들이다. 다른 암에 비해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들도 많고 항암치료 기간도 길며, 수술도 하고 방사선 치료도 하고, 1년간 표적치료제도 쓰고, 5년간 호르몬제도 쓰는, 치료가 복잡한 병이다. 나는 그들에게 유방암 치료가 끝난 후 발생할 수 있는 장기 합병증 가운데 신체적 측면에 맞추어 강의를 하게 ..

종양내과의사의 두 얼굴

항암치료를 받으러 외래에 오면환자는 일단 피 검사부터 합니다. 그날 피검사 결과에 따라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몸상태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하니까요.피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 시간 이상 외래 대기실에서 기다립니다.자기가 예약한 시간이 넘어도 앞 환자들 진료에 밀려 내 진료 시간은 지연되기 일수 입니다. 그 전에 CT라도 찍었다 치면그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에 초조함이 더해집니다.숨도 제대로 못 쉬고잔뜩 긴장해서 1분 1초가 영겁처럼 느껴집니다.그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두어시간 진료를 기다리다가겨우 주치의를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들어간 진료실, 의사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습니다.내 인사에 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의사는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그게 저의 모습입니다...

전화번호를 바꿔야 하나요

명함을 드렸던 내 마음 75세 이상 연세가 많으신데 항암치료를 꼭 해야 하는 분들신장기능이나 심장기능이 좋지 않아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질 수 있는 분들평소 만성질환으로 전신상태가 좋지 않고 병세가 위중하신 분들그런 분들께 명함을 드려 왔다. 암 치료의 긴 여정에는 늘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병이 나빠지면서 그러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지만, 애를 써서 위기상황을 극복하면 또 소중한 삶의 시간이 주어지기도 한다. 나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 회생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었다. 그런 내 욕심에 명함을 드렸다. 환자들은 자기 주치의 명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로를 얻는 것 같았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모르겠을 때, 그 누군가에게, 특히 ..

애꿎은 눈물 한방울

이런 식으로 하는거대학병원 횡포 아니야? 환자 드나드는 틈에진료실 문이 열리니 밖에서 소리치는게 들립니다.목소리를 듣자 하니 누군지 알 것 같습니다.제가 진료하는 환자의 남편인 것 같습니다. 그는 내 앞에서는 별로 싫은 소리 안하시고늘 네네 하십니다.예의를 갖추고 저를 대해주시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진료실 밖에 나가면 외래 대기실이나 간호사들이 앉아 근무하는 스테이션 앞에 와서는큰 소리도 많이 치고 간호사들에게 싫은 소리도 많이 하시는 분이었습니다.알고 보면 제가 약처방을 빼먹거나 진단서 요청을 받아놓고도 미쳐 작성하지 못해번거로운 일들이 생긴 것인데, 정작 저에게는 아무 말씀 못하시고 애꿎은 간호사에게 역정을 냅니다. 환자들은 마음 속으로 의사에게 불만이 많아도 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