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서로 딴 생각

슬기엄마 2012. 10. 25. 05:51

 

76세 할머니

병원에 혼자 다니신다.

 

십년전에 유방암 치료 다 받으셨는데

2009년에 재발했다. 뼈에만.

호르몬제 3년 드셨는데

석달 전 신장과 부신 쪽으로 전이가 진행되었다.

피검사나 몸 컨디션에는 문제가 없다.

새로 전이가 되었다고 말씀드려도 할머니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신다.

 

호르몬제를 바꿔 드렸다.

가능하면 항암치료는 안 하는게 좋겠다.

전이성 유방암에서는 제일 먼저 이 환자가 항호르몬치료의 적응증에 합당하는지를 고려하는게 치료 원칙의 1번이다. 할머니는 항호르몬 치료를 유지하는 기준에 합당하다.

그리고

가족의 지지가 별로 없는것 같다.

항암치료는 이렇게 혼자 병원 다니면서 받기 어려운 치료다.

 

3개월에 한번씩 CT를 찍어야 한다는 것에도 할머니는 불만이 많다.

 

그거 꼭 찍어야 되?

CT 자꾸 찍는거 않좋다며?

돈도 없어.

다 자식들한테 돈 타서 병원 다니는데 검사비가 너무 많이 들어.

할 필요도 없는데 그냥 검사하는거 아니야?

 

할머니는 자꾸 시비조다.

한두번도 아니고 매번 그러신다.

그래서 같은 말 반복해서 대답하는 것도 내심 짜증날라고 한다. 솔직히.

 

약을 바꾸고 3개월이 되었다.

CT를 찍자는 말에 할머니는 예의 그 불평불만을 시작하신다.

대꾸할 의욕, 할머니의 불평 공세를 막을 의욕이 없어 그냥 말을 듣고만 있다.

가족사가 펼쳐진다.

큰 아들은 어떻고

작은 아들은 어떻고

큰 딸은 어떻고

작은 딸은 어떻고

큰 손주는 어떻고

작은 손주는 어떻고

결론은 자식들 다 어려워서 병원 다니기 힘들다. 지금 하는 치료도 이번 CT 찍어본 다음 별일 없으면 그만 두시겠다는거다.

 

별일이 없겠는가.

이미 신체 내부 장기에 병이 전이가 되었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지금 처럼 항호르몬제 드시고, 불편한 증상없이 사실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하는 치료인데, 할머니랑 나랑은 완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석달에 몇만원이면 암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데

그걸 안 하시겠다고 하다니.

 

할머니 가족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짠하다.

치료 안하고 이제 그만 죽고 싶단다. 할머니의 고단한 삶이 느껴진다.

자기 맘대로 죽지도 못한다는 한탄이 나오기 시작한다. 아, 이제 이야기를 끊어야겠다.

나는 단호하게 말씀드린다.

 

그냥 제가 시키는대로 하세요.

검사 하라면 하시고, 약 드시라고 하면 드세요.

 

할머니랑 언제 한번 얘기 좀 진지하게 해야겠다.

그리고 할머니 말은 이제 그만 들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