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빡빡 머리에 잘 어울리는 귀걸이

슬기엄마 2012. 8. 2. 21:11

 

 

잘 어울리는 귀걸이를 찾기 위해 몇번을 시도해 봤을까요?

빨갛고 파랗고 하얀 보석이 박혀있는 화려한 귀걸이가 예쁘다고 했더니

빡빡머리에는 화려한 귀걸이가 잘 어울린다고 하네요.

왼쪽에는 4개, 오른쪽에는 두개.

과감하게 많이도 귀를 뚫었다고 했더니,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귀를 뚫고 새 귀걸이를 했대요.

별거 아니지만, 그 기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서점에 가서 신간서적도 사고 문방구에 가서 펜을 삽니다.

그래서 서점만큼 책이 많고 문방구만큼 펜이 많아요. 다 읽지도, 다 쓰지도 못할만큼.

그래도 그렇게 새책, 새펜을 사가지고 제 방으로 돌아오면 뭔가 좋은 일이, 뭔가 꼬였던 일이 풀릴 것 같은 신선한 느낌을 받아서 하루의 한 순간이 즐겁습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귀걸이였나 봅니다.

 

 

처음 만났을 땐

그녀도 나도 서로 당황했습니다.

그가 잔 기침을 할 때마다

나는 많이 긴장했습니다.

그렇지만 9번이라는 대 장정의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몸도 좀 붓고 손끝발끝도 저리지만

그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여행도 다닙니다.

언제 여행가도 되냐고, 수치가 안전할 때가 언제냐고 묻습니다.

같이 동행한 언니는 근심 가득입니다. 이렇게 항암치료를 받으며 여행을 다녀도 되냐고.

저는 적극 추천합니다.

그럼요.

 

그 마음 속에 그렇게 좋은 것만 있을까요?

내 앞에서처럼 그렇게 늘 씩씩하고 당당할까요?

그렇지 않을 거에요.

남몰래 눈물짓고, 수십번 수백번 절망하고, 수천번 슬픈 마음을 이겨내기 위해 일상을 투쟁하고 있을 거에요.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일상을 소중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감히 그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지만, 그 깊이를 다 알지 못하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정말 화이팅, 청춘입니다.

 

어떤 환자가 나에게 쪽지를 보내왔습니다.

휴가를 전후로 제가 좀 변한것 같다고. 환자를 보는 것도, 진료를 하는 것도 뭔가 변한것 같다고.

환자를 대하는게 더 애틋해 진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제 마음을 순식간에 그녀가 읽어버렸습니다.

사실 제 마음에도 변화가 있었거든요.

환자는 의사의 눈빛 하나, 표정 하나, 말 한마디를 예민하게 감지하나 봅니다.

누가 얘기해 줬어요. 아픈 사람은 사람의 눈과 마음을 읽을 줄 안다고 하더라구요.

 

외래에서 만나는 환자들, 나에게 소중한 분들입니다.

하루하루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분들입니다. 나를 좋은 의사가 되라고 채찍질 해주시는 분들입니다.

감사합니다.

 

용감한 청춘, 그녀의 다음 외래 때는 빡빡머리에 잘 어울리는 더 화려한 귀걸이를 하나 선물하려고 합니다. 오늘 샀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