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더위를 감사한 마음으로

슬기엄마 2012. 8. 6. 21:39

4년째 치료받고 계신다.

병이 거의 안정적으로 콘트롤되서

이제 외래에서 몸 상태나 어디 아픈거에 대해서 얘기할 게 별로 없다.

그냥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분이 오시면 나는 '벌써 3주가 되었나요? 시간 빠르네요.'라고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그만큼 환자의 상태가 안정적이다.

큰 딸 시집 보낸 이야기

시집보내고 나서 남편이 갑자기 자기랑 상의도 없이 30년간 살던 집을 팔아버려서

한달 넘게 말 한마디 안하고 냉전하며 등돌리고 지냈던 이야기

그래도 영감 불쌍하니까 밥은 챙겨먹이고 산다는 이야기

그래도 부부니까 가끔 같이 골프도 치러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진료한다.

진료가 아니라

대화다.

 

그래서 이 환자를 만나면

'별 일 없으셨어요?' 라고 묻기보다는

'뭐 좋은 일 없으세요?' 그렇게 묻는다.

내가 그렇게 물으면 환자는

'오늘을 살고 있으니까 좋은거죠.' 그렇게 답하신다.

오늘은 내가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여쭈었더니

'이렇게 더운 날도 내가 경험해 보고 살고 있으니 좋은거죠.' 하신다.

 

만사를 고맙고 기쁘게 생각한다는 그런 상투적인 말씀은 안하신다. 성격이 좀 무뚝뚝하시다.

그렇지만

이분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우리에게 장차 남은 생의 시간의 길이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지금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지금 내 마음이 전쟁이냐 평화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다.

 

나도 지금의 이 더위를 감사한 마음으로 견디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