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박카스 같은 한마디

슬기엄마 2012. 6. 13. 21:07

60세 여자 환자.

Vulvar cancer. 드문 암이다.

폐전이가 되었지만 이제 쓸 만한 항암제도 없다.

복수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다음 치료로 어떤 치료를 했으면 한다고 선뜻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외래에서 경과관찰만 하고 있다.

매번 외래에 환자가 오면

환자는 그럭저럭 지낼만 하다고 하시고,

환자가 나가고 나면 남편과 아들이 남아서 몇가지 더 질문을 하신다.

매번 우리의 대화는 비슷하다.

 

좀 어때요?

 

조금 더 나빠지신 것 같아요.

 

좋은 치료법 없을까요?

 

글쎄요. 1세대 항암제로 시도해볼 수는 있겠지만 반응율이 10% 미만이라 그걸 노리고 치료에 도전하다가 그나마 지금의 컨디션도 유지되지 못하고 나빠질 것 같아요. 항암치료 하면서 많이 힘들어 하셨잖아요.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이미 평균 기대여명은 넘어가고 있으니, 앞으로 남은 기간을 예측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환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나요? 저는 환자에게 이런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싶은데요.

 

 

그러던 환자가

엊그제 복수가 많아지면서 못 먹고 통증도 심해져서 왔다.

한달만에 한 피검사에서 신장 수치가 올랐다. 소변량도 줄었다고 한다.

환자는 복강 내 협착으로 요로 스텐트를 가지고 있는 분이다.

 

난 비뇨기과로 당일 스텐트 교환으로 협진을 내고 사정사정하여 응급 스케줄을 부탁하였다. 지방환자이니 다시 올라오라고 할 수가 없다, 오늘 입원도 안된다, 부탁한다. 비뇨기과도 갑자기 생긴 스케줄로 스텐트 교환을 해주려면 이것저것 준비가 필요할텐데 무식하게 그냥 부탁하였다. 그쪽에서도 어려움이 많을텐데 해주시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환자가 안하겠다고 한다.

하면 뭐하냐며 포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환자도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삶이란 죽음이란 다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때,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때 시도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설득하였다.

이런 얘기를 다음 대기환자가 지연된 상태로 기다리고 있는 외래시간에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가지고 하기 어렵다.

말기 암 환자가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어떻게 몇분 대화하고 설득한다고 바꿀 수 있겠는가.

산부인과에서 전과받은 이후, 나를 만난 다음에는 환자 병이 계속 나빠지기만 하고 있다. 그의 병이 나아지도록 내가 기여한 바가 별로 없었다. 그런 내가 심각한 얘기를 하는데 받아들이고 싶겠는가. 환자는 자신을 좋아지게 해 준 의사를 기억하고 그를 자신의 주치의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존재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녀를 겨우 설득하여 스텐트 교환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비뇨기과로 보냈다.

 

1주일 만에 신장수치도 정상이 되고 소변도 잘 보고 그래서인지 잔뜩 부풀었던 배도 좀 꺼져서 식사도 잘 하신다며 외래에 오셨다.

말이 없는 환자가 나에게 한 한마디.

 

선생님, 고마워요.

 

역시 환자는 좋아져야 한다.

환자가 마음을 담아 하는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모든 피로가 회복되는 박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