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피부관리 잘 하시고, 3개월 뒤에 봅시다

슬기엄마 2011. 12. 16. 15:25

환자 중에 메이크업 강사 선생님이 있다.
나보다 젊은 그녀.
밝고 명랑하다.
예쁘다.
언니도 유방암이라 나는 내심 걱정이 많은데 환자는 아주 긍정적인 캐릭터이다.

그녀의 피부는 가히 예술이다.
수술 후 6개월간 항암치료를 했는데
토하고 울렁거려서 잘 못먹고 엄청 고생했다. 설사도 많이 했다.
그렇게 못 먹고 설사하면 탈수되기 쉬워서 피부도 까칠해지고 외모도 많이 망가진다.
50kg가 조금 넘는 날씬한 그녀는 45kg 이하로 체중이 빠졌다. 몸무게의 10% 이상 체중이 감소하면 엄청 힘들다.
그런데도 그녀의 피부는 항상 탱탱하고 고왔다. 음, 뭔가 특별한 노하우가 있음에 분명하다고 짐작하곤 했다.
늘 그 비법이 궁금했는데
치료 중이라 그런 질문을 할 여가가 없었다.
힘들어하는 그녀의 상태를 살피며
독성 체크하고
불편한 점 확인해서 설명하고
약 처방하고
검사결과 설명하고
그러느라고 시간이 다 가기 때문이다.

오늘 그녀가 치료를 다 마치고 처음으로 외래에 왔다.
이제 몸무게도 원래 자기 몸무게로 회복하였다. 여전히 피부는 곱다. 얼굴은 더 예뻐졌다.
난 외래가 지연되고 있지만, 나의 평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내 마음속 사사로운 질문을 하고 말았다.

저기요... 피부관리의 비법은 뭔가요? 너무 피부가 좋으셔서요. 저 지금 얼굴 상태 않좋아 보이죠?

환자가 대뜸 나를 나무란다.

턱에 난 뾰루지 그거, 그만 좀 손대세요!

헐, 어떻게 내가 그거 손대는지 알아요?

척 보면 알죠. 맨날 틈만 나면 손대서 뜯고 있죠? 절대 그럼 안좋아져요.

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피부 보습이 제일 중요해요. 모이스쳐할 때 뭐 쓰세요?

모이스쳐가 뭐에요? 저 그냥 존슨앤존슨 핸드크림 얼굴에 바르는데... 그것도 겨울에만 발라요. 여름엔 더워서...

뭐라구요? 지금 나이에 핸드크림을 얼굴에 바른다구요? 못살아...
그거 손바닥에 짜서 얼굴에 막 문지르면서 바르죠?

네, 안그러면 어떻게 달리 바르는 방법이 있나요?

피부 결을 따라서 발라야되요.

피부에도 결이 있나요?

얼굴에 잔털이 난 방향이 위를 향해 있나요? 아래를 향해 있나요?

잔털 방향까지 보고 산 적이 없어서...

아휴, 그게 상식적으로 아래를 향하고 있는 거죠. 누가 대답하래요? 그러니까 크림을 바를 때도 위쪽에서 아래쪽 방향으로 발라줘야 하는거에요.

아.... 네.... 그럼 모이스쳐인가 뭔가 그건 뭘 쓰는게 좋아요?

** 회사에서 나온 모이스처라이징 크림을 쓰세요. 그게 화학성분이 최소화된 유기농 성분으로 만들어진 수분 크림 중에 제일 좋은거 같아요. 그리고 ** 회사에서 나온 에센스도 같이 쓰세요.
그리고 *** 오일을 한방울씩 떨어뜨려서 크림이랑 같이 섞어서 바르세요.
위쪽에서 아래쪽을 향해 바르시구요, 그리고 20초 정도 얼굴을 탁탁탁 두드려서 마사지 해주세요.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렇게 하세요.

아.... 네....

3개월 뒤에 제가 외래 올 때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보겠어요.

그럼 그때 다른 노하우도 알려주시는 건가요?

그때 봐서요.

...

...
대화가 끝났다.
난 내심 원하는 바를 얻어 대만족. 쿠사리를 먹기는 했지만, 전문가에게 조언을 얻었으니 오늘 당장 화장품 가게에 가야지 하면서 기뻐하고 있는데 환자가 나가질 않는다.

선생님, 그런데 제 검사결과는 어때요?

아 맞다. 내 정신, 검사결과 설명해줘야 하는데!

다 좋아요.
우리 3개월 뒤에 만나요.

환자와 함께 우리 둘이 다 빵터졌다.
잠깐이지만 환자와 관계역전.
당당하고 씩씩한 그녀가 멋질 따름이다. 그녀도 그녀의 영역에서 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