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환자들에게 죄송한 마음

슬기엄마 2011. 8. 22. 20:53

여러모로 무리가 많은 월요일 외래였다.
이유가 다 있었다.
그 이유를 밝힐수는 없지만...

오늘 외래오신 분들, 나를 많이 원망하셨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주부터 목요일 외래를 신설하기로 했다.  월화수목금 외래를 열어서 환자를 분산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실 목요일 하루는 나에게 외래가 없는 날이라
밀린 일도 하고 여러 회의나 모임도 하고 그랬는데, 그냥 다 포기하기로 했다. 
월요일은 오후,
화수목은 오전,
금요일은 오전오후,
토요일은 2주에 한번
이정도 외래를 열면 오늘처럼 몰리지는 않겠지?
외래를 자주 열면 여는 만큼, 
나의 모든 정신이 환자에게 쏠리기 때문에,
공부하는 시간, 연구하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나는 끝까지 욕심을 부릴려고 했었는데, 그냥 이제 연구는 당분간 접으려고 한다.
환자 진료를 좀더 무리없이 볼 때까지는.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사실 의사는 환자만 잘 보면 될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다른 일도 해야 한다.
다른 직업도 다 그럴 것이기 때문에 불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능력이 안된니까 더 힘든거겠지.

그래도 외래를 보는 날
나는 무엇으로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선물 받는다.
오늘은 평소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환자-난 정말 이 환자를 존경한다-가 원고를 써다줬다.
내가 준비하는 소책자 중 정신과 진료에 대한 환자로서의 경험을 써달라고 지난주에 부탁했더니
A4 용지 4장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잘 정리해오셨다.
너무 고마워서 환자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외래에서 간호사 스마트 폰으로 같이 사진도 찍었다.

오늘 외래에서 8명이 입원했다.
외래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증상이 있으면 입원시킨다.
그리고 밤새 CT를 찍거나 검사를 하거나 수액을 맞는다.
그렇게 힘들어서 입원한 환자들, 아직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환자, 오늘 늘어진 외래 때문에 항암제 못 맞고 간 환자, 그들 모두에게 미안한 밤이다. 어떻게 이런 일들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외래를 운영해야 할지 고민해야겠다.

오늘 본 환자들의 여운이 아직 머리에 꽉 차있는데 
내일 아침 9시면 또 새로운 환자들을 만나 진료를 시작해야 한다. 
빨리 머리를 비워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