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외래 지연 죄송합니다!

슬기엄마 2011. 8. 10. 19:41

외래시간이 예정보다 지연되면
EMR에서 자동으로 시간이 카운트되어
원장님께 보고됩니다.
다달이 통계도 나오는거 같습니다.
평균 몇분 지연되는지 의사별로 다 계산됩니다.
곧 외래 지연시간 넘버 3 안에 들게 될 것 같습니다. 경고 메일 대상자입니다.

이번주부터 손선생님의 외래가 없고, 제가 유방암 외래를 다 봅니다.
그래서 낯선 환자들과의 첫 만남들이 많습니다.
손 선생님이 오래 보셨다는 것은
그만큼 병력이 길기 때문에
사실 전날 환자 파악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언제 무슨약 쓰고 어디가 좋아졌고
그러다가 언제 어디가 나빠졌고 무슨 약 부작용으로 고생했고...
무슨 치료 하다가 열났고 중환자실 갔다 왔고....
CT와 각종 검사결과, 의무기록, 입원했으면 입원기록 등등을 챙겨보고 다음날 외래를 보지만
정작 환자를 직접 봤을 때는 새로운 느낌이 듭니다.

새 환자들과
안면도 터야하고
불안해하는 환자들에게 안도감도 주고 싶고
내가 당신의 병력을 충분히 잘 알고 있으니 너무 불안해 하시지 마시라 그런 느낌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나서 처음 해야 하는 얘기가
'병이 나빠졌네요. 약을 바꿔야겠습니다' 이런 말을 하게 되면 분위기 진짜 험상궂어 집니다.
눈에는 겁이 잔뜩
몸에는 긴장이 잔뜩
그리고 눈물을 뚝.
대기 시간이 계속 지연되고 밖에서 환자들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소리가 제 귀에도 다 들립니다.
환자들은 20분 지연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참을 수 없어 한다는 통계가 있더군요.

그래도 눈물을 흘리는 환자에게
'외래 시간이 지연되고 있으니 밖에 나가서 울어주십시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환자에게도 시간이 필요하고
저도 기다려야 합니다.

한번 외래에서 서너명이 울면 한시간은 훌쩍 지연됩니다.
병이 중하건 중하지 않건 간에
환자는 자신의 몸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감지하고 두려워합니다. 그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어합니다.
설명이 잘 되고 이해가 되면 두려움도 훨씬 덜하기 때문에 전 가능하면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복잡한 메커니즘을 다 설명하면 역효과입니다. 그런건 모르는게 나은것 같습니다.)
환자도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해야, 직성도 풀리고, 병원에 온 보람도 있고 그렇겠죠.
그래서 전 외래를 10분에 2명 예약으로 바꾸고 외래 시간을 앞뒤로 늘렸습니다.
오전 10시 진료는 9시로, 오후 2시 진료는 1시로 앞당기고 더 늦은 시간까지 보는 것으로 방침을 정하였습니다.
그래도 손샘 환자를 다 이양받고 보니 시간이 부족합니다.
제가 아직 요령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환자 상태를 100% 완벽하게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도 같고
아직 서로의 관계가 익숙하지 않아 척하면 척 아는 그런 이심전심이 아직 안통하는 면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같습니다.
한두 환자를 배려하고 하다가
많은 환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래서 9월부터는 월화수목금 매일 진료를 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토요일도 격주로 진료를 봅니다.
그래도 아마 제 외래는 지연될 것입니다. 아무리 진료시간을 늘려도 항상 부족할 것 같습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글로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