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환자들의 직업을 보며 든 생각

슬기엄마 2011. 8. 8. 20:19

환자 중에
간호사 약사 선생님도 있고
영어 강사 선생님도 있고
펀드 매니저도 있고
요가 선생님도 있고
음악 치료사 선생님도 있다.
잘 나가는 공무원도 있고
만화가도 있고
무역 중개인도 있고
실재 활발한 무역업을 직접 진두지휘하시는 분도 있고
음식점 하시는 분도 있고
24시간 감자탕 가게 하시는 분도 있고
맥주집 하시는 분도 있고
미용사도 있고
옷가게 하시는 분도 있고
인터넷 쇼핑몰 하시는 분도 있다.
우와. 다들 대단하시다!

외래에서 환자를 처음 볼 때
직업이랑 사시는 곳을 여쭤본다.
외래 시간이나 검사 일정을 잡으려면 병원 왔다갔다 하시는 형편을 알아야 하고
하시는 일에 맞춰서 필요하면 편의를 봐드려야 하니까.
그래서 입원치료를 안하는 유방암 항암치료지만
주말에 입원해서 치료받고 가시고 외래는 안오시는 분도 있고
원래는 진료가 없는 토요일에 외래 오셔서 항암제 맞고 가시는 분도 있고
환자분 일정에 맞춰서 날짜 조정 해드린다.
하루 이틀이 큰 차이가 없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조정해드린다.
집안에 큰 행사 있어도 가능하면 맞춰드린다. 시어머니 칠순잔치 맞춰서 일정 조정한다.
치료도 치료지만, 사는 것도 잘 살아야 하니까.

환자중에는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자기 일을 하시는 분들이 꽤 있다.
조기유방암 아닌 전이성 유방암 환자분들도 자기 일을 유지하며 사시는 분들이 많다.
마음 속으로, 솔직히,
환자에게는 다 잘 해드려야 한다는 숭고한 생각말고
'환자들한테 잘 해 드려야지. 나도 나중에 도움받을 날이 올지도 몰라. 사람 사는거 모를 일이야'라는
얇팍한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죄송해요. 여러분 제가 이정도로 얇팍하답니다)
그리고 사실 도움도 받고 싶다. (내가 개최하고 싶은 캠프에 참석하여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

농사일 하시는 분들은 야채 키워서
집안일 하시는 분들은 음식 만들어서
그 나름으로 나를 훈훈하게 지원해주신다.
우습다. 치료받고 고생하는 건 환자인데, 내가 답례를 받다니.
난 그래도 덥석덥석 잘 받는다. 이런 걸 뭐 하면서 바로 감사합니다 인사한다.

이런 분들이 병원 생활을, 치료받는 과정을 너무 괴롭지 않게 겪으셨으면 한다.
그리고 언젠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후배 환자들을 위해 멋진 모습으로 짠 하고 등장하셨으면 한다. 내 마음속의 천사(1004) 프로젝트를 위해 환자들의 신상을 잘 기록한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그들의 인생 이야기와 치료 경험담, 그리고 그렇게 얻은 삶의 지혜를 경청하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오길 기다린다.
이른바 Breast cancer survivor camp를 여는 것!
지금 비록 최고로 건강하지 않아도
인생의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 이겨내고 극복하며 살아가는
그 모든 분들이 함께 모이는 캠프 말이다.
그것이 지금 내가 꿈꾸는 한여름밤의 꿈이 아니길 기원한다.
Dreams come 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