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직무유기

슬기엄마 2011. 7. 20. 09:01

먹는 항암제가 많이 개발되었다.
독성이 강한 항암제도 있고, 표적치료제도 먹는 약으로 많이 개발되고 있다.
환자들은 항암제를 주사로 맞지 않으면 심적 부담이 덜한지
먹는 항암제가 편할거라고 기대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매일 복용하는 것으로 체내 혈중 농도가 유지되는 약이라
항암제의 약효 뿐만 아니라 부작용에도 같은 농도로 노출되는 셈이다.
그래서 독성 관리가 중요하다.
부작용의 정도를 보고 약을 잠시 쉬거나 용량을 줄여서
환자에게 효과가 있으면서도 부작용이 없는 가장 적절한 용량으로 장기간 잘 복용할 수 있게 복약지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집에서 먹는 약이라 환자 관리가 잘 안된다.
설사를 하거나 배가 살살 아프거나 입맛이 떨어진다는 등등의 이유로
환자가 한두끼니를 거르거나, 아예 안먹어 버리기도 한다.
약을 제대로 먹었는지 여부에 대해 환자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당장에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체내 혈중 농도 그런 걸 체크하는 게 아직은 효용성이 없으므로)
일기를 써오게도 하지만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환자가 그러는 건 그렇다고 치자.
먹는 약이다보니 약 처방이 쉽다. 그래서 의사도 쉽게 처방할 수 있다.
내가 종양내과라서 민감하게 구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종양내과가 아닌 과에서
먹는 항암제를 처방하는 경우
환자가 항암제인지도 모르고 약을 처방받아 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약 효과를 판단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CT를 찍거나
약 독성을 파악하기 위해 임상적인 문진이나 혈액검사 등을 제대로 체크하지 않은 채
환자는 정기적으로 먹고 있지도 않고
효과도 모르고
그냥 소화제 먹듯이 몇년째 먹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수년간 같은 약으로 먹는 항암제 처방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동안 약을 드시면서 별 문제 없었냐고 물어봤더니
그 약먹으면 설사가 심해서 약국가서 항상 빼달라고 해서 최근 몇달은 안먹고 지냈다고 하는 대답도 더 놀랄 지경이다.
무관심하게 항암제를 처방한 의사나,
자기 맘대로 약을 빼서 먹는 환자나,
환자가 빼달라고 항암제를 빼주는 약국은 또 뭔가.
먹는 항암제가 앞으로 점점 더 많이 개발될텐데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이 많이 있을 거라고 예상된다.

환자에게 직접 말하지는 못했지만
의사도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료시스템의 공백을 그냥 방관하는 것도
직무유기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