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환자가 나빠지는 길목을 잘 막아야

슬기엄마 2011. 6. 24. 19:52

대학병원 응급실이 욕 먹는 경우는 여러 모로 많다.
응급실은 그야말로 응급실.
환자가 응급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모든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하며 환자가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하루에도 몇번씩 있다. 그렇게 한 환자에 붙잡혀 최선의 진료(!)를 하는 동안 다른 환자에 대한 결정이 다소 늦어질 수 있다. 기다리는 환자는 다들 힘들고, 이런 조치에 섭섭하겠지만, 또한 다소 비효율적이라고 느끼며 불편할 수는 있지만,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은 언제나 가장 중환부터 치료를 진행해야 할 사명이 있다. 사람이 살고 죽고와 불편한 건 천양지차니까.

그렇지만
기다리느라 힘 빼고
때론 응급실에 입실도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응급실 이용료는 비싸고
입실해도 조치가 신통치 않고...
의료진에게는 별거 아닌것 같아도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나름 다 절박하기 때문에 이러한 응급실 상황에 맘이 편할 수 없다. 그것도 백번 이해.
각종 병원 평가기간에 응급실 대기기간이 평가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아예 응급실 밖에서 대기시간이 길다는 것을 설명하고 다른 병원으로 보내기도 한다. 이런 상황들이 응급실이 흔히 욕먹는 상황들이다.

암환자들이 항암치료 하다가 열이 나거나 설사하거나 못 먹어서 응급실에 오는 건
사실 응급실 길목을 지키고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열에 아홉은 응급이 아니다.
응급이라기 보다는 병원에서 적절한 처방과 모니터링으로 조치해주면 되는 환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록 환자들 스스로는 응급이라고 느낄지라도 말이다.
난 그래서 가능하면 응급실로 오기보다 일단 외래로 와서 나를 먼저 만나고 조치를 해보는 방향으로 설명한다. 상태가 심각하지 않으면 외래에서 약을 쓰면서 조치할 수 있는 경우도 꽤 많으니까.

그런데도 외래에서 응급실로 환자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때는 외래를 마치고 저녁에 응급실로 가봐야한다.
귀가조치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응급의학과 선생님 욕을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예를 들면
응급의학과 의사가 보기에
혈액 검사 정상, 아직 열도 안나고. 환자 신체 징후도 정상이고. 약간 힘들어 하는 정도.
그렇다면 먹는 약을 주고 내일 외래로 다시 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암환자를 주로 보는 내 판단으로는 곧 수치가 떨어질 것 같다, 환자 안색이 매우 좋지 않다, 하루 이틀 사이에 열이 날 것 같다, 병원에서 경과관찰하는 것이 환자에게 나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응급실로 보냈기 때문에 내가 보낸 환자가 입원조치가 되고 있는지 귀가조치가 되었는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응급실에 가서
응급의학과 선생님께 주치의인 나의 의견을 말하고 입실 및 입원할 수 있도록 '고진선처'를 부탁하면 안들어주는 선생님들 없다.  결국 내 환자는 내가 챙겨야 한다. 그것이 현재 우리 시스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암환자들 전용 응급실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여러 여건상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냥 내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겉으로 보기엔
구강궤양정도, 아직 백혈구 정상, 열 없고, 기운없는 정도의 50대 여자환자. 수술 후 항암치료를 4번 한 상태에서 외래에 오셨다. 입이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겠어요.
응급실에 환자가 적체되어 있어 의사 면담도 못 한 상태에서 4시간이 흘렀다.
나는 응급실에 가서 부탁했다. 수액을 좀 맞게 해달라고. 입원푸쉬는 내가 하겠다고. 응급실 구석자리를 겨우 배정받고 환자는 수액을 맞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병동으로 올라왔다. 열은 나지 않았지만 일단 항생제를 시작했다. 바로 수치가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다음날 열이 난다. 음 역시, 항생제를 미리 쓰길 잘 했어. 내심 흐뭇해 하는 다음날, 환자는 갑자기 전신 피부병변이 생기면서 물집이 생긴다. 대상포진이라고 하기엔 신경절을 따라 발생하는 병변이 아니다. 항생제 부작용인가? 환자가 숨도 차고 답답하다며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진다. 중환자실에 연락한다. 갑자기 기관지 부종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해둔다. 만에 하나 중환자실을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밤새 잠을 한숨도 못잔 환자. 많이 지쳐있다.
 
환자 진단은?
수두.
항바이러스제를 시작하였다.
환자는 저녁에 죽을 먹기 시작한다. 온 얼굴에 반점 투성이. 그래도 웃으면서 이제 좀 낫다고 한다.
사소해 보이는, 때론 두드러지지 않은 뭔가가 환자를 힘들게 한다.
항암치료 중에는 별일이 다 있다.
정말 맘 놓을 수 없는 치료이다.
그래도 환자가 죽을 먹으니
나도 한숨 돌리고 저녁을 먹어야겠다.

암환자들을 전문으로 보는 준응급실이 있으면 좋겠다.
응급실 운영을 위해서도.
우리 암환자를 위해서도.
열악한 상황에서도
우리 환자들 길목을 잘 막아주시는 응급의학과 선생님들께 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