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모범환자 1호

슬기엄마 2011. 7. 5. 18:22

오늘 처음 뵙는 환자분.
68세니까 그리 젊지 않다.
그리 늙었다고 보기도 뭐하다. 그렇지만 이제 할머니가 막 되어가는 것이 느껴지는 외모
처음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 3기 그래서 항암치료 하고 수술하셨다.
지금은 방사선치료를 마치고 허셉틴만 맞고 계신다.
연수가시는 손주혁 선생님께 치료받다가 이제 내가 진료하게 되었다.

"허셉틴 맞는건 힘들지 않으시죠?"
"그럼요 괜찮지. 이제 살거 같아."
"뭐 다른 거 어려운 점은 없으세요?"
"(림프부종 때문에 재활의학과에서 운동교육을 받으셨나보다) 꼭 이거 30번만 해야 하나? 내가 좀 더해보니까 좋던데. 해보니까 연습할수록 팔이 점점 더 많이 펴지고 잘 올라가."
"더 하셔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어차피 다 스트레칭이고 운동되는거 아닐까요? 더 하셔요"
"난 물리치료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그대로, 책자에 나온 그대로 펴 놓고 똑 같이 반복하고 있어.
근데 하면 할수록 몸이 유연해지고 좋은거 같아."

내가 보기에 그 책자는 설명이 잘 이해되지 않고 그림도 잘 모르겠고
그 책보고 나보러 따라해 보라고 하면 어렵고 금방 귀찮아질 것 같은 타입의 안내책자였다.
환자는 매일 그 책자를 펴 놓고 그림을 보면서 그대로 따라서 운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씩 운동시간을 늘려서 더 해보는데
할 수록 몸이 유연하다고 하시면서 내 앞에서 시범을 보이신다.
몸놀림이 날렵하다.

가만히 들어보니
의사가 하는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스타일이다.
음식드시는거, 생활하는거, 마음가짐...한순간에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이 환자분을 모범환자 1호로 등재시키기로 했다.
(모범환자는 내 수첩에 빨간 별을 달아 기록해 둔다)
그동안 치료받은 이야기도 간간히 경청해 볼 생각이다.
환자들에게도 다른 -더 잘나가는- 환자의 이야기를 해주면 자극과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가글 횟수도 잘 지키고
고기도 열심히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검사 외래 다 열심히 오고
그리고
진료실을 들어설 때 환하게 웃으면서 들어오는 환자.
그런 환자분들을 나의 모범환자 리스트에 올릴 예정이다.

지금 머리 속에 여러 분들이 떠오른다. 참 대단하신 분들 많다.
치료기간이 정해진 수술전후 치료가 아니라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인데도 그런 분들이 많다. 나는 그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잘 모을 생각이다.

석달 전
내 탈모를 걱정해 탈모속도를 늦추고 영양을 공급한다는 에센스를 선물해주신 환자분이 있었다. 그 분은 탁솔 치료를 마치고 표적치료제만 맞고 있는데, 그러면서 머리카락이 다시 나기시작한다. 자기도 에센스로 관리하는데 참 좋다고, 나보고 왜 안쓰냐고 성화시다. 그러고보니 히끗히끗한 흰머리가 짧게 난 머리가 어느 새 많이 길었다. 그분이 오늘 외래에서 갸* 라는 과자를 주고 가셨다. 자기가 먹어봤는데 이렇게 맛있는 과자 처음 먹어봤다고, 나도 먹어보라고. 한달에 한두번 의료낙후지역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개안수술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진료활동을 하고 계신다.   

전이되고 진행되어도 절대 울지 않는 환자.
설명을 잘 못하고 내가 쩔쩔 매고 있으면 '선생님 괜찮아요. 저 다 알아요. 그래도 열심히 치료받을거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먼저 말하는 쿨한 환자가 있다. 나를 다시 하느님께 기도하게 만든 환자이다. 나는 나보다도 젊은 이 환자 때문에 항암제를 앞에 놓고 하느님께 기도하게 되었다. 평균 효과를 넘어선 효과가 이 환자에게 나타나게 해 주소서. 난 기도할 때 너무 죄가 많으면 안될거 같아서 1년반 만에 고백성사를 보았다. 힘들어도 내색안한다. 그저 '좀 힘드네요. 이번 약은' 이 정도 표현.

7월 들어
나의 슈퍼맨 환자들, 나의 모범환자 리스트를 채우기 위해 수첩을 하나 샀다.
내 수첩이 그들의 삶에 대한 사랑과 용기로 가득 채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