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암 최초 진단 설명에 적절한 설명 시간은?

암을 진단받으면 1기든 4기든 누구든 큰 충격과 절망, 그리고 공포감을 느낀다. 의사는 무조건 위로할 수도 없고 처음부터 너무 겁나게 얘기할 수도 없고, 예후를 운운하며 협박할 수도 없고 정확한 정보는 줘야 하고... 환자는 의사의 설명을 듣는 와중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반문도 해야 하고 궁금함이 생기면 추가적인 질문도 해야 하고 의사는 그런 환자의 질문을 들으면 눈높이에 맞는 적절한 답변을 해야 하고 때론 비유를 드는 것이 적절할 때도 있고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구사해야 한다. 환자는 다 이해한 줄 알았는데 막상 의사가 가고 나니 또 다른 질문이 생기기도 하고 의사는 이미 다 설명한 것을 또 물어보면 짜증이 나기도 하고... 여하간 이런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치며 환자와 가족들은 병을 조금씩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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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유방암 진단시 유방 내 병의 크기가 크다거나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부분전이가 되어 있는 경우 바로 수술을 할 수도 있지만 수술전 항암치료를 8차에 걸쳐 받을 수도 있다. (혹은 약제에 따라 6번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병원은 수술전 항암치료를 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면 이 환자에서 항암제가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잘 알수가 있다. 예를 들면 처음에 크기가 얼마만큼 컸는데 나중에 수술을 하고 보니 종양의 크기가 얼마만하게 줄었다 하는 것들은 항암제 효과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직접적인 지표가 된다. 치료를 받으면서 환자들이 스스로 만져보면서도 알 수 있다. 앞에 4 주기를 할 때는 많이 줄었는데, 뒤쪽 4주기에는 별로 안 줄어드는거 같아요. 혹은 앞에는 잘 모르겠는데 뒷쪽 4..

집에 가면 암환자가 아닌것 같아요

2년만에 재발된 유방암 지금은 폐, 뼈로 전이된 상태시다. 이분은 원래 HER2 양성 유방암이었는데 처음에 유방암을 진단받고 수술하던 당시에는 수술 후에 허셉틴을 사용하는 치료가 보험으로 인정되지 않던 시절이다. (보험으로 인정되지 않으니 100% 약값을 환자가 다 내겠다고 해도, 그런 진료는 불법진료로 규정되어 있다. 일부 환자는 일단 자기가 약값을 내고 치료를 다 받은 후 심평원에 병원의 과잉진료로 민원을 제기한다. 불법진료를 했기 때문에 병원이 약값을 다 환불해야 한다. 결국 환자는 공짜로 치료받고 손해는 병원이 감당하는 사례가 아주 적지는 않다.) 환자는 이번 재발 후 허셉틴과 탁소젤을 근간으로 하는 임상연구에 참여하시게 되었다. 탁소텔을 맞자마자 전신 근육통이 심하게 왔다. 뼈로 전이된 부분의 ..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족쇄가 되어

과거의 일을 자꾸 되새겨 생각하다보면 기억이 재구성될 수 있다. 진실이 아닌 재구성으로...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다보면 현재의 불안이 심해질 수 있다. 그렇게 불안하면 미래에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는 재구성된 과거와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무엇보다 소중한 현재의 시간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5년전에 자궁경부암 1기로 수술을 받았다. 10년만에 재발하였다. 복강내 림프절 전이가 꽤 크게 생겼다. 그러나 완전관해가 되었고 환자는 이번에 유방암 3기로 진단을 받았다. 이제 유방암 항암치료 때문에 날 만나게 되었다. 5년전 자궁암 재발시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병행하던 중 직장과 방광, 피부 사이에 누공이 생겨서 우리병원에 오시게 되었다. 누공에 대..

저 죽어도 항암치료는 안받을거에요

환자가 분해서 죽겠다는 듯이 꾹 참다가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전 다 결심하고 왔어요.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항암치료 안할거에요" 색조화장도 진하게 하고 마스카라도 많이 바르고 왔는데 우니까 얼굴이 더 무서워졌다. 나는 전날 예습을 하면서 이 환자분은 정말 행운이라고 감탄을 했었는데... 1년반 전에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았을 때 이미 오른쪽 유방과 양쪽 겨드랑이 림프절에 전이가 되어, 위치가 양쪽이라 4기로 진단, 전이성 유방암으로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손주혁 선생님께서 일단 항암치료를 8차에 걸쳐 하시고 - 마치 3기 환자에게 하듯이 - 오른쪽 유방 및 겨드랑이 림프절 절제, 왼쪽 겨드랑이 림프절 제거술을 다 진행하였다. 일단 눈에 보이는 병을 다 제거한 것이다. 처음에 양쪽 겨드랑이 림프절에서 암..

할머니 환자

65세 할머니. 3-4개월동안 겨드랑이에 만져지는 림프절이 있어서 병원에 오셨다. 유방과 겨드랑이에서 모두 악성세포가 발견되어 수술전 항암치료를 하시기로 했다. 겨드랑이 림프절이 크고 갯수도 많다. 할머니는 외견상 까무잡잡한 얼굴, 땅딸막한 키, 말씀하시는 것이 여간 다부진 것이 아니다. '나 더 살아야헌게 잘 치료해주쇼' 2001년부터 고혈압 2007년부터 당뇨 2004년에는 암 의심하에 오른쪽 대장절제술을 시행하신 적도 있다. 수술 결과 암은 아니고 이형성증 (high grade dysplasia). 고위험군이니 애매할 때 수술하신 것은 잘 하신 듯. 그러나 그 뒤로 음식을 조금만 잘 못드시면 설사가 반복되신다고. 다행히 몸무게 변화는 없으신 정도. 또 이번에 유방암 검사를 하면서 발견된 골다공증. ..

단거 먹으면 안되나요?

항암치료 후 부작용이 심해 입원했던 러시아 환자분. 2주간 러시아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오시기로 했다. 2회에 걸친 항암치료 후 CT를 찍었더니 간이랑 폐의 병변이 많이 좋아졌다. 난 내심 좋아져도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는 앞으로 계속 -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데 과연 이 환자분이 언제까지 한국에 왔다갔다 해야 하는 생활을 하실 수 있을까? 혹은 이렇게 치료하는게 맞는걸까? 회진도 통역이 병동에 올 수 있는 시간에 맞춰서 따로 돌아야 한다. 퇴원도 컨디션이 다 좋아져서 하는게 아니라 예약된 비행기 시간을 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하게 되었다. 37.8도로 열도 났다. 딸까지 같이 한국에 나왔다. 아주 부자는 아닌것처럼 보이는데... "집에 가셔서 잘 지내실 ..

치료가 끝난 환자를 우연히 만나

우리병원에서 주관하는 삼중음성유방암 임상시험에 1번타자로 등록되어 항암치료를 받고 수술하신 환자분을 오늘 우연히 만났다. 6번 항암치료를 마치고 수술을 하시고 수술 후 상처가 더디게 회복되어 방사선 치료가 다소 늦게 시작되었다. 치료 기간 중에 등산에 갔다가 원인이 확실하지 않은데 쓰러지셔서 집 근처 응급실에도 가시고 아바스틴 때문에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아 대구에서 서울까지 헛걸음도 몇번 하셨다. 유방암 공부를 너무 많이 하여 아는게 병이었다. 자아가 강하신 분인데 약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다그치는 노력이 눈에 보였다. 진료를 하다 보면 뒷부분에 가면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난다. 오늘은 무사히 방사선 치료를 마치는 치료 마지막 날이었다. 토요일 점심, 병원이 아니라 연대쪽에 나가서 후배랑 거닐며 얘길 하고..

최초 사망

내가 주치의가 되고 나서 오늘 처음으로 입원 환자가 사망하였다. 누가 왜 사망에 이르렀냐고 물어보면 난 할말 많다. 의학적인 이유도 다 댈 수 있다. 별로 잘못한 것 없다. 그래도 ... 마음 속 깊은 곳이 편치않다. 중환자실 가지 말걸... 어떻게 할 걸 어떻게 하지 말 걸 의사의 선택은 반드시 도덕적으로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라 제 3자가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의학적인 이슈에는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거짓과 선이 극명하게 나뉘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양심의 거울을 늘 들여다 보아야 한다. 평생 스스로의 양심과의 싸움이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병동 간호사, 인턴, 레지던트 많이 괴롭혔다. 부끄러운 저녁이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60세. 1992년에 처음 유방암 수술을 했는데 1998년에 부분 재발을 해서 수술을 다시 하고 2002년에 피부로 재발을 했다. 10년째 병은 피부로만 나빠지고 있다. 지난 10년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항암제, 갖가지 항암치료를 하셨다. 그동안 병력지를 보니 항암치료를 해서 반응이 별로 없던 적도 있었지만, 반응이 좋아 같은 약제를 꽤 오래 유지하며 잘 컨트롤 되던 시절도 많았다. 호르몬 수용체 양성이라 호르몬 치료도 간간히 해 오셨다. 그러나 이제 종류별 항호르몬제, 항암제를 거의 다 쓰셨다. 10년간의 항암치료... 그런데 세상에 아직 피검사가 다 정상이다. 골밀도 검사를 했는데 뼈 상태도 완전 양호하시다. 병은 여전히 피부에만 있고 내부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피부 병면은 점점 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