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진단받으면
1기든 4기든
누구든
큰 충격과 절망, 그리고 공포감을 느낀다.
의사는
무조건 위로할 수도 없고
처음부터 너무 겁나게 얘기할 수도 없고,
예후를 운운하며 협박할 수도 없고
정확한 정보는 줘야 하고...
환자는
의사의 설명을 듣는 와중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반문도 해야 하고
궁금함이 생기면 추가적인 질문도 해야 하고
의사는 그런 환자의 질문을 들으면
눈높이에 맞는 적절한 답변을 해야 하고 때론 비유를 드는 것이 적절할 때도 있고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구사해야 한다.
환자는 다 이해한 줄 알았는데
막상 의사가 가고 나니 또 다른 질문이 생기기도 하고
의사는 이미 다 설명한 것을 또 물어보면 짜증이 나기도 하고...
여하간 이런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치며 환자와 가족들은 병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래도 가장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최초 진단 상황이다.
그래서 난 처음으로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자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려고 노력한다.
초진 환자는 외래 진료의 제일 앞부분이나 제일 뒷부분에 몰아서
한 사람당 시간을 충분히 쓰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신환들은 나를 만나는 첫날 오래 기다리느라 힘들었다고 불평한다.
중간에 신환이 박히면 설명하느라 시간이 지연되고 그러면 다음 환자들의 대기 시간이 늘어지고 환자들이 힘들어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불평했던 환자들은 자신에게 30분 이상의 충분한 시간이 할당되고 궁금함이 해소되면
기다림으로 인해 짜증이 났던 마음이 가라앉고 누그러져서 외래문을 나선다.
수술 후 1,2기 유방암을 진단받은 경우 15-20분 정도 설명한다.
병기가 낮으면 내 마음도 가볍고, 항암치료도 4회에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설명할 것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3기 이상, 혹은 4기로 진단받은 환자들은 입원을 시킨다. 도저히 외래에서 해결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또 환자 혼자 외래에서 설명을 듣게 하기보다는, 주요 보호자와 가족들이 함께 설명을 듣는 것이 의사에게나,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된다. 이른바 가족미팅(family meeting)을 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입원이 편리하다. 물론 이에 상응하는 의료수가는 없다.
최초 면담시
설명 시간을 오래 잡는 편인 내가
요즘 들어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분명히 다 설명했는데,
-최초 설명의 틀이 표준적으로 정해져 있어 환자별로 다른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
환자는 한번도 못 들어본 것 같은, 생전 처음 들었다는 말을 요즘 들어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환자의 언어로, 환자의 눈높이로 설명을 잘 한다고 자부해 왔건만,
역시 환자는 내 말을 선택적으로 들었나 보다.
또한 최초 진단 시 심리적인 공황 상태에서, 의사의 설명이 다 기억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아, 무조건 많이, 자세히 설명하는게 능사는 아니구나...
다른 암에 비해
비교적 젊은 여자 환자가 많기 때문에
나는 합리적인 의사소통의 과정과 질문/대답의 시간을 충분히 갖고,
환자가 자신의 병을 정확히 알며 치료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전략이었는데
의외로 안 먹히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환자와 가족들은 의사의 태도(attitude)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설명 자체를 잘 하거나, 이해를 잘 시켜주었는지의 여부보다는
자신을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설명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의사에 점수를 주는 것 같다.
내가 최선을 다해 설명하면
환자와 가족들은 만족한 듯 외래 문을 나서지만
그렇게 한 번 설명하고 나면 나는 내부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을 느낀다.
한명 한명 설명할 때마다, 그만큼 나는 소진된다.
그래서 외래를 마치고 나면 극심한 피로감에 영혼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외래 한 타임에 신환이 10명이었던 날도 있었다...
난 그래도 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전략을 바꿀 생각은 없다.
다만
환자에 대한 효과적인 설명 방식과 시스템,
암 진단의 고지, 나쁜 소식을 전하는 노하우에 대해
개인의 성실함이나 스타일에 의존하지 않고,
교육과 시스템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비단 암 뿐만 아니라
수많은 질환에서 마찬가지일 것이다.
투석을 처음 시작하는 환자
폐기능 저하로 산소 탱크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환자
뇌졸중 이후 말이 어눌해진 환자
교통사고 후 하반신 마비가 돌아오지 않는 환자
치명적인 진단명을 부여받은 환자에게 그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환자들이 충분히 이해하여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게 할 수 있는
그리고 의사도 너무 소모되지 않는
그런 교육 말이다.
1기든 4기든
누구든
큰 충격과 절망, 그리고 공포감을 느낀다.
의사는
무조건 위로할 수도 없고
처음부터 너무 겁나게 얘기할 수도 없고,
예후를 운운하며 협박할 수도 없고
정확한 정보는 줘야 하고...
환자는
의사의 설명을 듣는 와중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반문도 해야 하고
궁금함이 생기면 추가적인 질문도 해야 하고
의사는 그런 환자의 질문을 들으면
눈높이에 맞는 적절한 답변을 해야 하고 때론 비유를 드는 것이 적절할 때도 있고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구사해야 한다.
환자는 다 이해한 줄 알았는데
막상 의사가 가고 나니 또 다른 질문이 생기기도 하고
의사는 이미 다 설명한 것을 또 물어보면 짜증이 나기도 하고...
여하간 이런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치며 환자와 가족들은 병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래도 가장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최초 진단 상황이다.
그래서 난 처음으로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자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려고 노력한다.
초진 환자는 외래 진료의 제일 앞부분이나 제일 뒷부분에 몰아서
한 사람당 시간을 충분히 쓰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신환들은 나를 만나는 첫날 오래 기다리느라 힘들었다고 불평한다.
중간에 신환이 박히면 설명하느라 시간이 지연되고 그러면 다음 환자들의 대기 시간이 늘어지고 환자들이 힘들어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불평했던 환자들은 자신에게 30분 이상의 충분한 시간이 할당되고 궁금함이 해소되면
기다림으로 인해 짜증이 났던 마음이 가라앉고 누그러져서 외래문을 나선다.
수술 후 1,2기 유방암을 진단받은 경우 15-20분 정도 설명한다.
병기가 낮으면 내 마음도 가볍고, 항암치료도 4회에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설명할 것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3기 이상, 혹은 4기로 진단받은 환자들은 입원을 시킨다. 도저히 외래에서 해결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또 환자 혼자 외래에서 설명을 듣게 하기보다는, 주요 보호자와 가족들이 함께 설명을 듣는 것이 의사에게나, 환자에게 더 도움이 된다. 이른바 가족미팅(family meeting)을 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입원이 편리하다. 물론 이에 상응하는 의료수가는 없다.
최초 면담시
설명 시간을 오래 잡는 편인 내가
요즘 들어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분명히 다 설명했는데,
-최초 설명의 틀이 표준적으로 정해져 있어 환자별로 다른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
환자는 한번도 못 들어본 것 같은, 생전 처음 들었다는 말을 요즘 들어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환자의 언어로, 환자의 눈높이로 설명을 잘 한다고 자부해 왔건만,
역시 환자는 내 말을 선택적으로 들었나 보다.
또한 최초 진단 시 심리적인 공황 상태에서, 의사의 설명이 다 기억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아, 무조건 많이, 자세히 설명하는게 능사는 아니구나...
다른 암에 비해
비교적 젊은 여자 환자가 많기 때문에
나는 합리적인 의사소통의 과정과 질문/대답의 시간을 충분히 갖고,
환자가 자신의 병을 정확히 알며 치료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전략이었는데
의외로 안 먹히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환자와 가족들은 의사의 태도(attitude)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설명 자체를 잘 하거나, 이해를 잘 시켜주었는지의 여부보다는
자신을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설명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의사에 점수를 주는 것 같다.
내가 최선을 다해 설명하면
환자와 가족들은 만족한 듯 외래 문을 나서지만
그렇게 한 번 설명하고 나면 나는 내부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을 느낀다.
한명 한명 설명할 때마다, 그만큼 나는 소진된다.
그래서 외래를 마치고 나면 극심한 피로감에 영혼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외래 한 타임에 신환이 10명이었던 날도 있었다...
난 그래도 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전략을 바꿀 생각은 없다.
다만
환자에 대한 효과적인 설명 방식과 시스템,
암 진단의 고지, 나쁜 소식을 전하는 노하우에 대해
개인의 성실함이나 스타일에 의존하지 않고,
교육과 시스템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비단 암 뿐만 아니라
수많은 질환에서 마찬가지일 것이다.
투석을 처음 시작하는 환자
폐기능 저하로 산소 탱크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환자
뇌졸중 이후 말이 어눌해진 환자
교통사고 후 하반신 마비가 돌아오지 않는 환자
치명적인 진단명을 부여받은 환자에게 그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환자들이 충분히 이해하여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게 할 수 있는
그리고 의사도 너무 소모되지 않는
그런 교육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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