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호스피스 환자를 위한 명상 프로그램 준비

환자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지만 항암치료를 하지 않는게 나은 경우가 있다. 병은 조금씩 나빠져 가는데 의외로 전신 컨디션이 괜찮아서 음식을 드시고 여기저기 다니시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다. 효과적인 항암제가 더 이상 없다. 이제부터 항암제를 쓰면 효과보다는 독성이 더 심하게 나타날 것 같다. 그럴 때 환자분께 항암치료를 그만 하고 외래 다니면서 경과관찰만 하자고 말한다. 그러면 환자들은 망연자실해 하기도 한다. '저를 포기하신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항암치료만이 당신의 삶을 더 낫게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을 통증없이, 불편함없이 하실 수 있도록 경과관찰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 정도 외래를 잡아준다. 그러면 환자는 매우 낙심한 얼굴로, 나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

말할 수 없는 것의 진실

예전에는 다른 의사, 다른 과, 다른 병원의 잘못, 비합리성, 문제점에 대해 거침없이 얘기했었다. 학생 때는 당당했고 인턴 때도 비판적이었다. 청년의사에 글도 싣고 내 생각을 주장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레지던트 시절 부터는 누가 나에게도 돌을 던질까봐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펠로우 시절에는 객관적인 시각이라는 미명 하에 남을 돌아보기보다 나를 먼저 돌아보게 되었다. (겸손의 의미가 아니라...)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제 다른의사/다른과/다른 병원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다. 나에 대해 말하는 것/다른 나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여전히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주 미시적인 것, 아주 거시적인 것을 논하는 것에는 별로 책임감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환자를 보다가, 병원 생활을 하다가..

때론 환자들이 지혜를 가르쳐준다

외래 진료시간이 지연되지 않아 여유가 생기면 대개의 환자들이 힘들어하는 각종 치료 부작용들을 잘 이겨내고 있는 환자들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하고 계신가요?" 항호르몬제를 먹으면 꼭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손발이 뻣뻣해지고 굳어지는 느낌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어떤 환자는 햇살좋은 오전에 햇빛을 쬐면 좋아진다나... 햇빛을 보면서 손발을 주무르고 스트레칭을 하면 훨씬 몸이 부드러워서 자기는 햇빛 치료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햇빛치료? 말이 되는 얘긴가 싶어서 논문을 찾아본다. 왠걸! 햇빛을 받으면 pineal gland에서 melatonin이 활성화되고 이 멜라토닌이 호르몬 작용경로를 조절하며 free-radical의 형성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치료의 독성을 예..

마음이 괜히 '울컥'해집니다

수술을 하고 난 다음에 하는 항암치료보다 수술을 하기 전에 항암치료부터 해야 하는 환자는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앞길이 막막하다고 느낀다. 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는 경우는 대게 종양의 크기가 크거나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국소적으로 병이 진행된 경우가 많아서 대개 6개월, 8차에 걸친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6개월 동안 항암치료를 하고 수술을 하고 이후에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할 가능성이 높고 환자에 따라 5년간의 추가 호르몬치료 혹은 1년간의 허셉틴 치료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으로의 치료기간이 길어서 환자의 막막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처음 시작하는 AC 요법은 교과서적으로 오심 구토가 매우 심하다고 되어 있으나 좋은 항구토제가 많이 개발되어 잔뜩 겁을 먹고 치료를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지..

엄마의 문자메시지

오늘 오전에 엄마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셨다. "나물 손질 끝냈다. 어떤 환자인지 진심어린 뇌물같아 마음이 좀 아리다. 너의 손길에 강한 치유의 능력이 있길 빌어보마 늙은 엄마" 어제 강원도에 사는 한 환자가 택배로 산나물을 한상자 가득 보내주었다. 드룹, 달래 등 (이름도 모르는 것도 있고) 봄나물 가득. 보낼 때 거의 다 손질도 다 해서 보내주시기는 했지만 워낙 나물을 많이 보내셔서 종류별로 나누어 담고 보관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엄마가 마무리 손질을 다해서 나누어 담으신 후 문자를 보내주셨다. 출근하면서 내가 이거 어쩌나 성가셔했더니 안심하라고... 강원도 산나물을 택배로 받을 때도 엄마의 문자메시지를 받고서도 가슴이 먹먹하다.

이렇게 죽을 수 있을까?

"삶에 어떠한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즐거운 일들을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내 딸들과 사랑하는 아내가 내 투병과 죽음으로 부터 희망을 찾기를 바랍니다. 세상 아니 우주 전체가 아름답고 놀라운 세상입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으며 후회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딸들아, 너희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최선을 다한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구나. 나의 베스트 친구이자 나의 아내여. 당신이 없었다면 무엇을 했을지 모르겠구려. 당신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초라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소. I loved you, I loved you, I loved you." 오전 인터넷에서 본 외신 기사이다. 41세의 남자가 결장암으..

항구토제와 진통제를 먹을 때 - 아드리아마이신, 탁소텔을 맞는 분들께

약제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항암제는 대개 오심 구토를 유발합니다. 그래서 항암제 맞을 때는 항구토제가 같이 투여되고 먹는 약으로도 처방해드립니다. 항구토제를 복용할 때 원칙은 구토감이 '오기 전'에 미리 약을 복용하여 아예 구토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구토감이 생겼는데 참다가 약을 먹으면 효과가 별로 없고 전혀 못 느낄 때 미리 먹어버려야 약효가 좋다는 말씀입니다. 항암제로 인한 구토는 약을 투여받은 날로부터 24시간 내에 구토감을 느끼는 경우와 3-4일이 지난 후에 구토감을 느끼는 두가지 종류로 나타나는데 아드리아마이신이나 시스플라틴 종류로 항암치료를 받는 분들은 3-4일 후에 발생하는 구토감이 훨씬 힘듭니다. 그래서 '에멘드(Emend)'라는 알약을 항암치료 첫날, 둘째날, 셋째날 드..

어버이날

아침에 회진을 돌다보니 환자 침대 머리맡에 꽃다발이 놓여있다. 어제가 어버이날이었는데 자식들이 병원에 다녀간 모양이다. 맛있는 음식도 못 드시고 영양제만 주렁주렁 매달고 계신다. 아직 백혈구 수치가 낮아 마스크를 둘러쓰고 머리는 숭숭 다 빠져버린 그런 늙고 지친 엄마를 보고 간 자식들 마음은 어땠을까? 뇌 방사선치료 중인 젊은 엄마는 병이 눈까지 진행되어 시력이 좋지 않다. 방사선 치료를 몇일 했는데 썩 나아지지는 않았다. 치료를 마치고 시간이 좀 지나봐야 경과를 알 수 있을텐데... 어린이날 부처님 오신날 이래저래 샌드위치로 공휴일이 많으니 방사선 치료 일정도 지연되고 집에 있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매일 눈물바람이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정서가 불안하다며 정신과 진료를 자처한다. 지방에 있는 아이들이 어..

죄책감

6개월동안 8차에 걸쳐 항암치료를 마치셨다. 항암치료 후에 한달 반에 걸쳐 방사선 치료도 받으셨다. HER2 양성으로 1년동안 3주간격으로 병원에 다니시면서 허셉틴을 맞으셨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병원출입을 하시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하간 이제 치료가 끝났다. "치료 끝났는데 뭘 제일 하고 싶으세요?" "이제 바깥 좀 나가 돌아다니고 싶어요" "아니, 그럼 그동안 바깥 출입을 안하셨다는 건가요?" "네, 병원만 왔다갔다 했어요. 괜히 암환자가 나돌아 다니는거 않좋아 보일거 같아서요." 엥? 1900년대 초반, 당시 나병이라 불리던 한센씨병 환자들이 사람들로부터 배척되고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살던 시절 얘기를 듣는 것 같다. Stigma... 낙인... '암'이라는 병은 아직도 암이 아닌 ..

여자보다 귀한 것 없네

오늘 우리 병원 유방암 환우회에서 핑크리본 합창단의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제2회였는데, 난 사실 내막을 잘 모르고 그저 행사가 있으니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에 시간에 맞춰서 병원 강당으로 향했다. 우리병원에서 치료받고 환자들 사이에서 조직된 세유회에서 합창 모임이 시작된 것 같다. 올해가 2회이니 아마 작년에 처음 시작된 행가인가 보다. 일단 합창실력이 꽤 좋았다. 음, 오랫만에 음악회에 참석하게 되었군. 그런 생각을 하며 음악을 즐길 수 있었으니...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환우들의 남편들로 구성된 프로젝트형 남성중창단. 약간 화음이 어색해도, 약간 음정이 불안해도, 약간 율동에 통일감이 떨어져도 이들이 내는 음색과 하모니, 그 에너지가 느껴지는 합창연주회였다. '여자보다 귀한 것 없네' 라는 노래, 웃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