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어버이날

슬기엄마 2011. 5. 9. 12:28

아침에 회진을 돌다보니
환자 침대 머리맡에 꽃다발이 놓여있다.
어제가 어버이날이었는데 자식들이 병원에 다녀간 모양이다.
맛있는 음식도 못 드시고 영양제만 주렁주렁 매달고 계신다.
아직 백혈구 수치가 낮아 마스크를 둘러쓰고 머리는 숭숭 다 빠져버린
그런 늙고 지친 엄마를 보고 간 자식들 마음은 어땠을까?

뇌 방사선치료 중인 젊은 엄마는
병이 눈까지 진행되어 시력이 좋지 않다.
방사선 치료를 몇일 했는데 썩 나아지지는 않았다. 
치료를 마치고 시간이 좀 지나봐야 경과를 알 수 있을텐데...
어린이날 부처님 오신날 이래저래 샌드위치로 공휴일이 많으니
방사선 치료 일정도 지연되고
집에 있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매일 눈물바람이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정서가 불안하다며 정신과 진료를 자처한다.
지방에 있는 아이들이 어제 올라온 모양이다.
아침 일찍 방사선 치료 스케줄을 잡아 후딱 마치고 외출 다녀오시기로 했다.
칙칙한 병원 입원복을 벗고
아이들과 비슷한 색상의 분홍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병원문을 나선다.
하필 오늘 날씨가 왜 이러냐...

큰 병을 계기로
가족간에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우애를 다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어버이날 어린이날 무슨 이런 기념일이 많은데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누군들 기분이 좋을까....
그래서 나는 설, 추석, 어린이날, 어버이날 이런 명절, 기념일이 좀 싫다.
그런거 없이 살면 뭐 덧나나?
그런 날 아니어도 평소에 잘 하고 살면 되지 뭐.
안그래도 쓸쓸한 환자들 마음이
더 스산해지는 비오는 월요일이다.
오후 외래를 기운빠지게 보면 안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