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임상연구에 참여한다는 것은

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하시는 분들께 임상연구를 설명한다는 일이 쉽지는 않다. 살고 죽는 문제인데 임상연구가 왠말이냐 생각하시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의 역사는 잘 짜여진 임상연구에 의해 발전되었고 좋은 치료법이 만들어져 왔다. 이는 객관적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종양내과 의사들은 크고 작은 규모의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실 임상연구를 하지 않고 가이드라인대로 표준치료만 하면 훨씬 편하다. 환자에게 표준치료만 설명해도 되기 때문에 긴 설명이 필요없다. 예전에는 '지금 내 병을 감당하기도 힘든데, 무슨 나를 동물처럼 시험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냐'는 식의 인식을 갖는 분이 많았는데, 환자들도 점차 임상시험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하고 있다. 임상시험은 기존에 입증된 표준 치료에 비해 우..

유방암과 체중

수술전 항암치료를 8주기 하고 수술을 하신 48세 환자. 추가적인 항암치료를 더하는 것이 향후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리는 임상연구에 참여하여 먹는 항암제를 드시는 중이다. 오늘이 마지막 주기 첫째날. 치료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또 먹는 항암제로 추가로 치료한다는 것이 사실 상당히 힘든 일인데 우리 환자는 큰 부작용없이 얼굴색이 약간 검어지는 정도, 피부에도 별 문제없이 항암기간을 보내고 계신다. 아주 씩씩하시다. 지난 번 외래에서 목이 붓는 것 같다고 하셔서 만져보니 특별히 만져지는 것은 없는데 내가 보기에도 도톰하게 목이 부으셨다. 갑상선 호르몬 검사와 초음파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갑상선호르몬 저하증이 진행되고 있었고 초음파 상으로도 전체적인 갑상선이 비후되어 염증이 심한 것..

이번엔 몽고 환자

74세 몽고 할아버지. 징기스탄의 후예답게 키는 좀 작아도 인물이 아주 좋으시다. 40대 중반 쯤 되는 아들, 아버지를 좀더 서양화시킨 외모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들도 잘 생겼는데, 키가 훨씬 크다. 아들은 영어도 잘 한다. 나는 지난 주에 이 할아버지를 만나 Kaposi's sarcoma 를 진단하였다. 별로 경험이 많지 않은 병. 나는 환자를 만나 공부를 많이 해야만 했다. 대개 이 병은 에이즈 환자에서 많이 나타나는 병이기 때문에 이 환자처럼 HIV 음성이고 다른 병력이 없으신 분은 별로 보지 못했다. 왼쪽 서혜부 림프절 조직검사에서 진단된 kaposi's sarcoma는 Classic type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피부병변이 없다. 피부과 선생님은 지금 보..

내가 잊고 싶지 않은 것

'의사선생님만 믿을께요' 사실 환자가 이렇게 말하면 부담스럽고 싫을 때가 있다. 그렇게 전격적으로 의사에게 믿음을 주었다가 자기 기대만큼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되면 나쁜 결과의 모든 원인을 의사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 환자가 나빠서 그런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환자가 쿨하게 굴고 나에게 그렇게 절대적인 믿음을 부여하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건 내 맘이 아니라 환자 맘이니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런 부담스러운 눈빛 말고, 별 말 없이 나를 믿어주는 환자의 눈빛을 느낄 때가 있다. 그때의 부담은 훠얼씬 크다. 대체 내가 뭐길래 나를 믿고 치료를 받겠다고 하시나... 나는 묵주반지를 끼고 다니지만 사실 기도를 그리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신앙심이 깊지..

삽겹살 먹어도 되나요?

먹자 시리즈 1탄 수술 후 재발방지를 위한 항암치료를 하시는 분들은 상대적으로 마음이 여유로운지 부작용도 그러려니 하면서 잘 참으시는 것 같다. 호르몬만 드시거나 허셉틴만 맞으시거나 하시는 분들은 진료시간에 특별히 질문도 없으시다. 불편한거 있으세요? 좀 있는데 그럭저럭 참을만 해요. 괜찮아요. 그럼 약 드릴게요. 꼬박꼬박 잘 드세요/잘 맞으세요. 정도의 대화로 진료 끝! 그러면 안될것 같아 난 한마디 덧붙인다. '특별히 궁금한거 있으세요?' 한 환자가 질문을 한다. '삽겹살 먹어도 되요?' '함요!' 환자분은 유방암 진단받은 후로 삼겹살을 한번도 안 드셨다고 한다. 1년반이 넘었는데... 자기는 고기 중에서도 삼겹살을 제일 좋아하는데 지방이 겹겹이 끼어있는 고기를 먹으면 왠지 안될 것 같아서 꾹 참고 ..

골다공증치료까지 하라구요?

4기 환자를 치료하며 이런 고민을 하는게 어쩌면 유방암이니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10년도 더 전에 유방암을 진단받고 수술하신 56세 아줌마. 8년전에 재발했다. 폐와 간에. 항암치료를 했더니 반응이 좋아서 CT에서 병이 잘 안보일 정도가 되었다. 이어서 호르몬제를 쓰면서 3년정도 지났는데 다시 재발했다. 다시 항암치료, 반응이 좋아 다시 호르몬제. 이런 식으로 환자는 한번 치료를 하면 효과가가 좋고 꽤 오랜 기간 동안 효과가 유지되는 스타일이었다. 이렇게 항암치료와 호르몬치료가 반복되다 보니 뼈의 질이 나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또 폐경기와 겹치는 기간이라 인위적인 치료가 뼈에 미치는 영향을 상당히 나빴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골다공증검사를 했더니 T=-2.4, 골다공증 진단기준인 -2.5 이니 미치..

사랑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뇌종양 중에서도 성질이 고약한 Glioblastoma Multiforme. 이 병으로 수술하신 54세 아주머니. 수술 후에도 방사선화학동시요법 그리고 나서 먹는 항암제를 6주기 유지하는 것이 이 환자의 치료계획이었다. 이 환자는 항암제를 먹는 기간 동안 아바스틴이라는 약을 추가로 더 투여하는 것이 재발에 도움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를 보기위한 임상연구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1:1로 배정이 되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약이 투여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위약이 투여된다. 어차피 표준 치료로 먹는 항암제는 두 군 모두에서 먹는 것이므로 무작위 배정으로 위약이 들어간다 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다른 세포 타입의 뇌종양에서는 아바스틴의 효과가 입증이 되어서 이 환자의 세포 타입에서도 기대해 볼 만 하다는 가정하에 시작..

뇌 전이

뇌로도 병이 진행되었다구요? 다른데는 병이 없는데 뇌로만 암이 전이되었다구요? 수술한지 1년밖에 안되었는데요? 조금 어지러운 거 말고는 증상도 별로 없는데요? ... ...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한다구요? 나이도 젊은데 방사선 치료하면 바보되는거 아니에요? 저 아직 애들 학교가는 것도 봐줘야 하는데... 우리 뇌 속의 혈관에는 각종 외부의 것들이 뇌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막는 일종의 진입장벽과 같은 구조가 있다. 의학용어로 BBB (Blood Brain Barrier) 라고 한다. BBB 때문에 우리가 치료를 위해 쓰는 약물도 뇌로 잘 전달되지 못한다. 어떤 항암치료를 해서 폐나 간 등 몸 여기 저기에 있는 병은 잘 콘트롤이 되고 있는데 어느날 문득 뇌로 병이 전이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가 쓰는 항암..

항암주사를 맞다가 새면?

여자 환자들이라서 그런가? 혈관이 약하다. 나만 해도 팔에 근육은 별로 없고 지방만 많아 혈관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일반 수액을 맞아도 금방 퉁퉁 붓는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지방도 녹이고 혈관 탄성도도 올리고 유연하게 해야 하는데... 항암제처럼 그 자체가 혈관에 해를 입힐 수 있는 약제는 맞을 때마다 혈관이 딱딱해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쪽에, 다음 번에는 다른 쪽에, 그 다음번에는 다리에...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서 혈관을 찾아 헤매면서 맞는 환자들도 있다. 환자들이 빨간 약이라고 하는 아드리아마이신은 항암제 중에도 혈관 독성이 심하다. 주사를 맞다가 혈관이 터지면서 주위 조직으로 항암제가 새는 일이 생기는데 다른 항암제는 좀 몇일 아프거나 피부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다가 다시 원상복귀 되는 경우가 ..

환자가 준 탈모방지 샴푸

오늘 외래에서 한 환자가 선물을 주었다. 내가 최근에 머리가 많이 빠지는 것 같아서 당신이 준비했다며 탈모방지 샴푸와 뭔가 추가로 뿌리는 에센스같은 것을 주었다. Scalp Treatment Science라고 씌여 있다. (일반 샴푸가 아니라 꽤 비싼 제품 같다.) 참고로 환자는 탁소텔을 맞고 있어서 머리가 하나도 없다. 그녀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종이가방을 책상에 올리더니 준비해 온 아이템을 꺼내 사용법을 설명하면서 내 두피를 마사지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마사지를 해야 한다며 앞부분에 머리가 이런 식으로 빠지는 건 혈액 순환이 안되는 스트레스성 탈모라고 설명한다. 나는 그냥 내 머리가 마사지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냥 마음이 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