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저 죽어도 항암치료는 안받을거에요

슬기엄마 2011. 5. 24. 16:52

환자가 분해서 죽겠다는 듯이
꾹 참다가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전 다 결심하고 왔어요.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항암치료 안할거에요"

색조화장도 진하게 하고
마스카라도 많이 바르고 왔는데
우니까 얼굴이 더 무서워졌다.

나는 전날 예습을 하면서
이 환자분은 정말 행운이라고 감탄을 했었는데...
1년반 전에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았을 때
이미 오른쪽 유방과 양쪽 겨드랑이 림프절에 전이가 되어, 위치가 양쪽이라 4기로 진단, 전이성 유방암으로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손주혁 선생님께서 일단 항암치료를 8차에 걸쳐 하시고 - 마치 3기 환자에게 하듯이 -
오른쪽 유방 및 겨드랑이 림프절 절제, 왼쪽 겨드랑이 림프절 제거술을 다 진행하였다.
일단 눈에 보이는 병을 다 제거한 것이다.
처음에 양쪽 겨드랑이 림프절에서 암세포가 다 관찰되었는데
수술 후 보니 겨드랑이 림프절에 병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항암제에 성적이 아주 좋았던 것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나서 남은 왼쪽 유방에서 1cm 짜리 크기의 병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왼쪽 유방 절제술을 하여 또 눈에 보이는 병을 다 제거하였다.
이론적으로 처음부터 4기였기 때문에 완치를 바랄 수 없었지만
이 환자는 현재 병이 없고 완치를 바랄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다만 이 환자 암세포의 생물학적 속성이 다소 공격적이고 다시 재발할 가능성은 있지만 말이다.
난 그래서 어떤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이고 약제저항성이 없을까, 가장 효과적으로 미세잔존해 있는 암세포를 공략할 수 있는 약제는 무엇일지에 대해 논문도 찾고 근거도 만들고 다른 병원 유방암 보시는 선생님과 통화하면서 의견도 듣고 하여 뿌듯한 마음으로 외래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정작 환자는 절대 항암치료는 안하겠다고 한다.
자기 나이가 40이 넘었지만
아직 결혼도 안했고
먹고 사는 것도 힘들고
여자로서 양쪽 가슴을 다 절제하고 이제 남은 것은 머리카락밖에 없단다.
항암치료하면 머리가 또 빠질텐데 여자로서 그게 무슨 꼴이냐고, 자기는 자존심도 없겠냐고
그냥 살다가 재발하면 그때 치료하든가 치료안받고 죽든가 하겠다고...

호르몬 수용체가 1년전에는 양성이었는데 이번 수술 결과는 음성으로 전환되어 호르몬제를 쓰는 것도 의미가 없다. 아드라이마이신, 탁소텔을 다 쓰신 분이고, 삼중음성이니 젬자 카보 정도로 쓰면 독성도 덜하고 효과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비록 눈에 보이는 병은 없지만 미세전이암이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보였고 환자가 젊으니 항암치료를 적극적으로 하는게 완전 관해를 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환자는 아주 단호하다.
머리 안빠질수도 있는 용법이라 했더니
바로 공격한다. 빠질 수도 있는거 아니냐고. 머리 빠지면 절대 항암치료 안한다고 한다.
자기는 그 얘기를 나한테 하고 가기 위해 오전에 진료가 끝났는데도 집에 안가고 기다렸다가 통보하고 가겠다며 오후 진료 마지막 시간까지 날 기다렸다고 한다.

그냥 핑 가버려도 그만인데 나에게 자기 의사표시를 하려고 했다는 것에
갑자기 환자가 예의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눈은 시커멓게 되어 울면서 아주아주 짜증나는 목소리로 항암치료를 안하겠다고 말했지만 말이다.
난 휴지를 건네며

"좋아요. 2주 후에 다시 봅시다"
"항암치료도 안할건데 뭐하러 봐요?"
"그냥요. 일단 2주후에 한번 더 볼거에요. 아시겠죠?"

난 왜 그녀를 다시 오라고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