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일을 자꾸 되새겨 생각하다보면
기억이 재구성될 수 있다. 진실이 아닌 재구성으로...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다보면
현재의 불안이 심해질 수 있다. 그렇게 불안하면 미래에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는 재구성된 과거와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무엇보다 소중한 현재의 시간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5년전에 자궁경부암 1기로 수술을 받았다.
10년만에 재발하였다. 복강내 림프절 전이가 꽤 크게 생겼다.
그러나 완전관해가 되었고
환자는 이번에 유방암 3기로 진단을 받았다.
이제 유방암 항암치료 때문에 날 만나게 되었다.
5년전 자궁암 재발시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병행하던 중
직장과 방광, 피부 사이에 누공이 생겨서
우리병원에 오시게 되었다. 누공에 대한 복원 수술이 잘 되었다.
피부와 장기 사이에 누공이 생긴 것은 아마도 치료관련 합병증이리라.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면 안되는 격이다.
환자는 이전 병원에서 했던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중단하셨다.
우리병원 누가, 어떻게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재발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한다. 내가 지금 예전 사진을 리뷰한 바에 의하면 재발이 확실하고 치료반응이 좋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환자는 이전 병원의 치료가 완전히 잘못되고
자기는 그 후유증으로 너무 고생했다고 생각한다.
일부 수술 날짜 등에 대한 확인이 필요해 이전 병원에 한번 다녀오실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자기 그 병원은 절대로 안가신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그때 고생하고 힘들었던 걸 생각하면 진짜 억울하다며 울기 시작한다.
날 만난지 세번째인데, 그때마다 매번 우신다.
환자는 5년전 경험이 너무 트라우마였나보다. 그리고 잘못된 치료를 받았다고 믿고 있다.
굳이 이전 병원의 검사, 치료 등에 대해 코멘트를 안하는게 좋은데,
이번에는 과감하게 말씀드린다.
"그 병원에서 환자분을 잘 치료해주셔서 지금 이렇게 잘 살아계신 거라고 생각해요.
전 그 병원에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그, 전 그동네 살면서도 병원 쪽으로는 가지도 않아요."
"그건 환자분의 잘못된 생각인것 같아요. 지난 5년간 그 생각을 하면서 너무 힘드셨을거 같은데요? 제가 보기엔 아주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러니까 또 오래 살아서 유방암이 걸렸으니 이제 3관왕이네요. 또 잘 이겨내봅시다."
"..."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고 원망스러워서
힘든 항암치료를 시작할 수 있겠어요? 우리 앞으로 6개월은 같이 고생해야 하는데..."
환자는 또 눈물바람이다.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환자와의 라포가 어디 한두번에 만들어지겠는가.
환자의 마음을 좀 편안히 해드리고
좋은 마음으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치료를 시작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다.
과거나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바로 현재에 집중하실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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