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할머니.
3-4개월동안 겨드랑이에 만져지는 림프절이 있어서 병원에 오셨다.
유방과 겨드랑이에서 모두 악성세포가 발견되어
수술전 항암치료를 하시기로 했다. 겨드랑이 림프절이 크고 갯수도 많다.
할머니는 외견상 까무잡잡한 얼굴, 땅딸막한 키, 말씀하시는 것이 여간 다부진 것이 아니다.
'나 더 살아야헌게 잘 치료해주쇼'
2001년부터 고혈압
2007년부터 당뇨
2004년에는 암 의심하에 오른쪽 대장절제술을 시행하신 적도 있다. 수술 결과 암은 아니고 이형성증 (high grade dysplasia). 고위험군이니 애매할 때 수술하신 것은 잘 하신 듯. 그러나 그 뒤로 음식을 조금만 잘 못드시면 설사가 반복되신다고. 다행히 몸무게 변화는 없으신 정도.
또 이번에 유방암 검사를 하면서 발견된 골다공증. T 점수가 -3.5 이니 골다공증도 심하시다. 으악, 넘어지면 바로 골절이네.
갑상선도 이상해보여서 다시 초음파를 해야한다. 갑상선에 암이 나와도 놀랄 것은 없거니와 유방암 수술할 때 같이 하면 되니까 상관없지만, 그래도 자꾸 뭔가가 발견되니 좀 찝찝하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환자들은 암을 하나 더 진단받으면 크게 크게 상심할 것이다.
항암치료를 하기 위해 할머니 몸 상태를 따지다 보니, 이것저것 걸리는게 많다.
할머니는 겉으로는 멀쩡하셔서 어서 치료를 시작하자고 성화시다.
관행적으로
노인의 나이를 65세로 간주해왔지만 -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만 -
컨디션 좋은 어르신들이 많아지면서
난 평소 진료할 때 65세를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최소한 70은 넘어야 하고, 75 쯤 되어야 비로소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만큼 나이드신 분들의 건강상태가 좋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아마도 마음 속에 65세를 다 넘기신 부모님들이 아직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항암치료를 해 보면
나이가 많을수록
부작용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확실히 많아진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멀쩡했는데...
사소한 감염도 잘 이겨내지 못하고 패혈증성 쇼크로 응급실에 오시기 쉽상이다.
한번 입원을 하면 쉽게 퇴원을 하지 못한다.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하려면 무섭다.
아예 환자의 유방암 캐릭터에 위험요인이 많으면,
굳세게 마음 다잡고 환자 교육 맹렬하게 다시 해서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면더이상의 갈등이 없을텐데
문제는 잘 알려진 위험요인이 많지 않을 때 과연 치료를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가이다.
재발의 위험요인을 시사하는 유전자 연구도 많고
각종 분자생물학적 기법의 발달로 암환자의 피, 조직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유전자 연구는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연구' 단계이지 실재 진료로 실용화되지 않고 있는 형편.
때론 나도 환자들에게 동의서를 내밀려 연구를 위한 채혈을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사실 이러한 연구의 직접적인 혜택을 환자가 받기는 어렵다.
그 다음 세대를 위해 도움이 된다면 그나마 다행.
그러므로
아직은 불확실한 연구결과에 기댈수도 없고,
추가적인 검사나 치료계획을 수립하는데 돈도 많이 들지 않아야 하고
환자에게 해가 없어야 하는 치료예측모델이 필요하다.
특히 취약한 노인들은 검사나 치료 자체가 환자를 힘들게 할 수 있으므로 더 신경을 써야 하는것 같다. 에고, 회진돌고 내려와서 논문을 좀 찾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오후 외래를 준비할 시간이 가까와온다.
인간이 장수하다보니
암이 발견되는 시기도 늦춰지고
고령의 암환자가 점점 많아진다.
의학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가족부양의 문제
이런 것들이 점점 더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 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족쇄가 되어 (1) | 2011.05.25 |
---|---|
저 죽어도 항암치료는 안받을거에요 (10) | 2011.05.24 |
단거 먹으면 안되나요? (3) | 2011.05.22 |
때론 환자들이 지혜를 가르쳐준다 (2) | 2011.05.13 |
마음이 괜히 '울컥'해집니다 (0) | 2011.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