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Hug

가끔 환자들과 Hug를 할 때가 있다. 여자들끼리의 포옹. 같은 여자들끼리가 그런걸까? 별로 어려워하지 않고 속내를 드러낸다. 오늘 Hug한 환자.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합병증을 다 겪으셨다. 가족은 캐나다에 있고 본인 혼자 남아 치료를 받았다. 열 나고 케모포트에 혈전 생기고 늑막에 물 고이고 다리 붓고 살 엄청 찌고 부갑상선호르몬 기능 항진되고 B형 간염 보균자라 항바이러스 먹는데도 가끔씩 간수치 오르고 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지나고 보면 다 그렇고 그런 일이다. 무사히 치료 끝났으니 다행이다 싶다. 그러나 이런 이벤트가 한번씩 생길 때마다 당시에는 환자 마음 고생이 너무 심했다. 많이 울었다. 자꾸 울면 정신과 진료 볼거라고 했더니 환자가 억지로 눈물을 참는게 역..

지금 상태가 어떤가요?

누가 뭐라해도 난 환자와 가족에게 설명 하나는 잘 해드리는 편이라고 내심 자부하는 편인데 알고보면 그런 것도 아닌가보다. 사실 외래에서는 심도깊은 얘기를 할 겨를이 없다. 외래에서 항암치료를 진행할 정도의 컨디션이라는 것 자체가 일단 전신상태가 양호하다는 것, 환자 상태가 그만그만 잘 견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래에서 많은 대화를 못하고 싸이클에 맞춰서 항암치료를 하던 중 어떤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을 때 병이 나빠지면서 환자의 컨디션이 나빠질 때 입원을 하시게 된다. 즉 입원을 하는 상황 자체가 환자와 가족에게 뭔가 추가적인 설명을 더 해야 하는 때라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암환자는 힘들다는 이유만으로도 입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원인을 잘 찾아보면 이 환자가 힘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 치료의..

반지

구슬공예로 직접 만든 맑은 유리구슬반지. 본3때 외과실습 돌다가 수술방 갱의실에서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후 난 반지를 끼지 않는데 엊그제 외래에서 환자가 자기 손에 끼고 온 구슬반지를 빼주고 갔다. 선생님 이 반지는 선생님에 대한 제 마음이에요. 제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포장해 오면 안받으실까봐 그냥 드려요. 오 마이 갓, 닭살멘트. 저 포장해 오셔도 잘 받아요. 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감사합니다 얌전히 받았다. 환자 몸 온갖 군데를 쪼물쪼물 만져야 하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손을 씻어야 한다. 그래서 진료의 관점에서 보면 의사는 반지를 안끼는 것이 낫지 않나 싶다. 그래서 반지를 선물해 주신 환자분께는 죄송하지만 과연 내가 이 반지를 끼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환자 앞에서는 ..

우울모드

나의 기분을 근본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환자의 상태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약간의 조울이 있는데, 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베이스라인은 환자 상태가 결정한다. 요즘은 우울 모드이다. 몇일 전 그리고 오늘 얼마전까지 멀쩡하던 환자가 갑자기 말을 안하고 멍해지고 의식이 흐려져서 응급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명은 급성 뇌경색. 한명은 간성 혼수. 급성뇌경색 환자는 밤 9시에 주무실 때까지 가족들과 얘기도 잘 하고 멀쩡하셨는데 새벽 3시에 으으 신음소리를 내서 가족들이 깨우니 반응이 없고 의식이 흐려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CT를 찍고 뇌 큰 혈관에 혈전이 생긴 급성뇌경색을 진단했지만, 급성뇌경색을 치료하는 골든타임인 6시간이 지나 발견되어 혈전용해제를 쓰는 치료적 적응증이 되지 못해 경과관찰..

일상으로 복귀하라 그 구질구질한 일상으로!

입맛 좀 다셔보려고 뭣 좀 먹으려고만 하면 그거 몸에 않좋다 암치료 받고 그렇게 나쁜 음식 먹으면 안된다 이거 먹으면 면역이 좋아진다니 한번 먹어봐라 떡볶이 한개만 집어먹어도 커피 한 잔 마시려고 해도 생크림 케익 한 조각 먹으려고 해도 주위에서 난리입니다. 암환자는 그런 거 먹으면 안된다고. 우리나라에는 왜 이리 몸에 좋은 음식이 많은지, 주위에서 이것저것 선물해주고, 좋다는 음식 알려주고, 아주 관심들이 지대합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런 관심을 받으면 나에게 신경을 써주는구나 고맙다 그런 생각이 들기보다는 다들 왜 이렇게 나를 특별대접 하는거야? 자기 일 아니니까 너무 쉽게 말하는거 아니야? 그들이 던지는 한두마디의 격려조차 짜증이 납니다. 가족도 직장 내 동료도 나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내는거 같고..

엄마들의 고민

유방암으로 항암화학요법을 받는 엄마들. 자기 몸, 자기 병 말고도 고민이 많다. 그래서 젊은 유방암 환자를 만나면 첫 면담 때 결혼하셨는지, 결혼하셨으면 아이가 있는지, 아이가 있다면 몇명이고 몇살인지도 물어본다. 꼬맹이들만 있는 엄마들은 미리부터 같은 헤어스타일로 가발을 맞추고 치료를 시작한다. 항암치료 하다가 탈모가 생겨 다른 헤어스타일의 가발을 쓰면 아이들이 놀라고 엄마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사춘기 딸이 있는 엄마는 딸 아이의 일기장에 '우리 엄마가 유방암이라는 사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몰랐으면 좋겠다'는 대목을 읽으시고 충격을 받으셨다고 한다. 평소에 친구들을 집에 잘 데리고 오는 딸아이, 친구들이 놀러오던 날, 엄마의 가발이 약간 삐뚤어져서 인상..

나에게는 예정되어 있던, 가족에게는 준비가 안된

연수가신 손주혁 선생님이 끝까지 진료하시던 환자. 나를 처음 만난 건 재발된 유방암으로 치료를 9번 하고 CT를 찍고 결과를 보러 온 날이다. 예전에 만난 기억이 있는,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처음 진료를 보는 날, 나는 환자에게 폐전이가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야 했다. 수술 전 항암화학요법을 하다가 환자가 자의로 치료를 거부하였고 몇달뒤 폐로 전이가 되어 병원을 다시 찾으셨다. 다행히 첫 치료에 반응이 좋은 듯 싶었고 9번까지 항암치료를 한 후에 휴지기를 가질 예정이셨다. 그런데 9번 항암치료 후 찍은 CT에서는 전이가 다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첫 면전에서 병이 나빠졌다는 소식을 전해야했다. 다시 항암치료를 하자고 했더니 환자가 몸이 아직 힘들다면서 조금 더 쉬었으면 한다고 하신다. 난 2주후..

나쁜 환자

며칠전 저녁, 병동에서 세시간 넘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퇴원한 환자가 있었다. 유방암 뼈전이를 진단받은 환자였는데 뼈조직검사를 하고 퇴원하려고 했다가 조직검사 한 곳이 너무 아파서 하루 더 있다가 가기로 했다. 퇴원 예정이라 점심 식사도 안 나오고, 이후에 퇴원 취소 처방을 냈는데 병동을 옮기는 바람에 인계가 제대로 안되면서 또 식사처방이 빠져서 환자가 2끼 식사를 못하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정확한 정황은 내가 직접 자리에 없어서 확인이 안되지만, 2번 다 식사가 안 나오니까 간호사가 사다 드시라는 말만 했다고 한다. 그말에 환자는 열받아서 퇴원을 하겠다고 결정하였다. 6시 넘어서 갑자기 퇴원을 결정하는 바람에 서류 처리에 시간이 걸렸고 그 왕 소란을 피우고 내 얼굴도 안 보고 돈도 안내고 퇴원해버..

목욕탕 가도 되요?

겨드랑이 림프절을 제거한 탓인지 수술한지 1년이 넘었는데도 팔이 자꾸 붓고 어깨랑 등도 뻐근하다. 방사선 받은 부위는 피부도 예민해지고 자꾸 벗겨져서 허옇게 일어난다. 방사선 조사부위는 다른 곳보다 더 뻣뻣하다. 내 살 같지 않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열날까봐 제대로 목욕도 안 했다. 개운치 않았다. 그런 환자들이 치료를 대강 마치고 호르몬제만 먹거나 허셉틴 유지치료를 하는 동안 묻는 질문, 목욕탕 가도 되요? 목욕탕 가도 되냐고 묻는 환자들은 대개 유방보존술을 하신 분들이다. 유방전절제술을 하신 분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아직 목욕탕, 찜질방, 수영장 옷을 벗을 자신이 없다. 대중탕에는 가급적 들어가지 마시라고, 때도 너무 세게 밀지 마시라고 한다. 항암치료가 끝났어도 몸의 면역체계가 정상화되..

병원은 생전 처음이에요

우리 병원에서 유방암을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나를 처음 만나는 환자들은 대략 공부를 많이 하고 온다. 인터넷도 찾아보고 아는 사람들한테 얘기도 듣고 해서 대략 각오를 하고 오시는 것 같다. 그래서 왠만하면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이미 말라버린 걸까?... 마음속으로 눈물을 꾹국 참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쭈욱 설명을 하면 고이는 눈물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시는 것도 알고 있다. 난그냥 모른척 한다. 그런데 오늘 줄줄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한 채 내 설명을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는 환자분이 있었다. 지병이 없어서 병원이라고는 처음인데 암이라는 엄청난 병을 진단받고 경황이 없으신가보다. 겨드랑이 림프절 양성, 종양크기는 대략 2cm, 충분히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