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이유를 알고 본인이 치료과정의 주체가 되도록...

항암치료 중 백혈구 촉진제라는 걸 맞으면 골수 내에 있는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백혈구들이 자극을 받아 튀어 나온다. 골수에 있는 백혈구가 말초로 튀어 나오는 과정에서 환자들은 등이나 엉덩이 (골수가 많이 만들어지는 곳) 통증을 극심하게 경험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통증이 오고 난 다음에 백혈구 수치가 오르는 걸 몇 번 경험해 본 환자들은 몸이 심하게 아픈 걸 보고, 내일쯤 백혈구가 오르나 보다 그렇게 짐작하신다. 백혈구 촉진제를 맞고 아픈 통증은 진통제로 잘 조절되지 않아서 약을 먹으나 마나 라고들 하신다. 왜 이렇게 아프대요? 그 약을 맞으면 그렇게 아플 수 있어요. 왜냐하면 ...... 와 같은 이유 때문이에요. 아, 그래요? 그렇다면 참아야죠. 전 또 뼈로 병이 진행된 줄 알아서 불안했거든요..

임종시간

이제 환자가 돌아가시는 시간이 언제인지 알 것 같다. 24시간 내, 48시간 내, 72시간 내 돌아가실 것 같다는 나의 느낌은 거의 맞는다. 그래서 환자와 가족들을 단속한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할 말 있으면 다 하시라고, 볼 사람있으면 다 만나시게 해 주시라고. 환자는 아직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은데 왜 그러시냐고. 가족들은 부인한다. 재산문제, 법적인 문제 그런 것도 다 정리해 놓는게 좋겠다는 나의 썰렁한 말에 경악을 금치못하면서도 내가 이렇게까지 나오면 가족들이 감상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린다. 내 병이 치료되지 않는 암이라는 사실을 알 때부터 환자와 가족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이 삶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치료 가능성이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치..

퇴원해서 있을만한 병원

유방암이 복막으로 전이된 환자. 어떤 암이든 복막 전이가 진행되면 복막과 장이 유착되어 장 운동이 원할하지 않다. 복막증이 진행된 환자들은 장이 막힌 건 아닌데 꼭 막힌 사람처럼 잘 먹지 못하고 먹으면 토하고, 가스도 잘 배출되지 않아 콧줄을 끼우고 있기도 한다. 유방암 복막 전이는 그리 흔하지는 않은데 이 환자는 복막증이 잘 치료되지 않아 제대로 못 먹고 지낸지가 수개월.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먹고 기운내서 항암치료를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두꺼워진 복막때문에 영양실조로 돌아가시게 생겼다. 60대 초반의 환자는 의식도 맑고 본인의 상황도 잘 이해하고 계시고 우리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받으신 분이라, 어떻게든 치료를 받고 좋아지고 싶어 하셨다. 예전에도 힘든 위기의 시간을 항암치료를 하여 넘기신..

고생은 자기가 다 해 놓고

수술 전 마지막 항암치료. 진료실을 들어서는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보인다. 수술 전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으러 온 그녀에게 그동안 고생많으셨다고 악수를 청하는데 악수를 하는 두 손에 눈물을 뚝 떨어뜨린다. 그동안 고마웠다며. B형 간염 보균자라 비보험으로 비싼 간염바이러스 약도 같이 먹고.. 임상연구 약 먹느라고 입이 다 헤져서 음식 잘 못드신다길래 영양제를 처방해 드렸더니 그걸 맞고 발생한 피부 알레르기 부작용 때문에 밤중에 응급실도 왔다 가고.. 약 처방 일수가 잘못 계산되서 중간에 약 타러도 따로 오시고.. 치료 기간 동안 순탄치않고 불편한 점 투성이였는데 나에게 그걸 탓하지 않고 고맙다고 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 보다 약간 어린 그녀. 슬기 보다 약간 어린 딸이 있는 그녀. 자기 딸이 좋아..

효심

나의 토요일 진료는 격주로 열린다. 오늘은 토요일 외래가 없는 날이지만 환자 2명을 진료하였다. 한명은 학원을 운영하는 내 또래 유방암 환자. 처음 진단을 받았는데 목 주위 림프절까지 이미 전이가 되어 당장 수술하는 것보다는 수술전 항암화학요법을 받는게 필요하다. 병기가 높기 때문에 치료를 미룰 수 없는데 주중 외래에서는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첫 설명을 제대로 할 시간이 없어 오늘 진료하였다. 또 한명은 내 또래 아들이 있는 유방암 환자. 이미 뇌로도 전이가 되었다. 그로부터도 2년이 지났다. 환자는 소뇌위축증이 있어서 원래 말씀도 약간 어눌하고 걸음걷기도 편치 않아 휠체어로 다니신다. 그냥 얼핏 보면 환자 컨디션도 않좋아보이고 큰 희망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받은 환..

감정적 오류

의사들은 감정에 의존하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한다. 환자에 대해 강한 감정이 생길 경우, 설사 그것이 긍정적인 감정이라 해도 의사들은 경계해야 한다. 의사들은 당연히 환자를 깊이 염려하고 좋은 결과를 바란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문제를 철저히 파헤치지 못할 수도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환자에게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내려고 편법을 동원하는 식의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 제롬 그루프멈 지음, 닥터스 씽킹 (How doctors think) 중에서 의사의 판단은 어떻게 내려지는가, 그 인식의 과정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2007년에 1쇄가 나왔는데 올해 11쇄를 찍었으니 많은 의사들 혹은 의사를 지망하는 사람들 혹은 의사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

위기

주말을 지내고 나서부터 글을 쓰기가 힘들어졌다. 글을 쓰고 싶지도 않고 잘 써지지도 않는다. 평소에 쓰고 싶은 주제나 아이디어가 생기면 책상 한 귀퉁이에 메모를 해 놓는데 그런 메모가 몇 개 쌓여있어도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글을 쓴다는 건 마음이 동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 마음이 얼어붙었다. 몇년만에 찾아온 위기다.

환자가 달라졌어요!

손선생님께 오랫동안 치료받은 환자. 나랑은 지난 8월에 처음 만났다. 나랑 처음 만난 진료시간, 지금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지금 받은 항암치료로 어떤 독성이 나타나고 있는지 질문했다. 변비 속쓰림 콕콕 쑤시는 통증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호소하는 일반적인 통증이다. 나는 이전 약처방을 참고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약을 처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방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그동안 약 먹었어도 도움도 안되고 그렇게 추가로 먹는 약 때문에 부작용이 더 심했다며 자기 가방에서 각종 약 봉다리를 잔뜩 꺼내 진료실 책상에 던져놓는다. 그동안 처방받은 약들인데 효과도 없고 그런데도 계속 같은 약만 처방해 준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다소 무례하다. 최근에는 이렇게 처방해 준 약 하나도 안 먹었다고. 아주 화가 났..

주말 책상 정리를 하다가

주말이라 한주일동안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책상을 정리한다. 책상에는 갖가지 메모지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메모지에는 꼭 해야할 일, 연락해야 할 사람들의 전화번호, 그리고 환자 ID와 이름이 적혀있는 메모지가 제일 많다. 연락처는 다른 곳에 옮겨 적어두고 해결된 일이면 메모지를 버린다. 환자 ID는 진료보다가 뭔가 고민을 더 해야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수첩이나 메모지에 ID 번호를 적어두는데 메모를 할 당시에 뭘 더 고민해야 할 지 그 내용을 써 두지 못하고 ID만 써 놓은 경우가 많다. 내가 이 환자 번호를 왜 적어놨었더라? 생각이 안나면 청소하다 말고 EMR을 켜고 환자 신상을 다시 검색한다. 사진 열어보고 지금 들어가고 있는 약 검토하고, 내가 적어 둔 의무기록들을 다시 본다. '아! 그랬었지..

왜 영양제도 안 주시나요?

임종을 기다리는 환자. 가족들도 긴 병에 많이 지쳤다. 더 이상 검사하지 말고 편안하게 돌아가셨으면 한다고 하셨다. 나도 그러는게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엊그제부터 수액을 다 끊었다. 임종 직전에는 수액을 끊는게 환자에게 편안하다. 임종 순간에 각종 분비물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에 환자가 힘들다. 어제부터 혈압이 떨어지더니 아침에 회진을 도는데 혈압이 70-80mmHg 정도 밖에 안된다. 내일쯤 돌아가시겠구나. 진통제만 남기고 모든 약을 다 중단하였다. 진통제만 약간 증량하였다. 동공이 작아졌지만,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다. 나는 환자 상태를 살피고 별 말 없이 방을 나섰다. 남편이 따라나온다. "영양제도 안 주시고 너무하시는거 아닌가요? 아무리 죽을 사람이라고 하지만..." "영양제나 수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