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한주일동안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책상을 정리한다.
책상에는 갖가지 메모지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메모지에는
꼭 해야할 일, 연락해야 할 사람들의 전화번호,
그리고 환자 ID와 이름이 적혀있는 메모지가 제일 많다.
연락처는 다른 곳에 옮겨 적어두고
해결된 일이면 메모지를 버린다.
환자 ID는
진료보다가 뭔가 고민을 더 해야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수첩이나 메모지에 ID 번호를 적어두는데
메모를 할 당시에 뭘 더 고민해야 할 지 그 내용을 써 두지 못하고 ID만 써 놓은 경우가 많다.
내가 이 환자 번호를 왜 적어놨었더라?
생각이 안나면
청소하다 말고
EMR을 켜고 환자 신상을 다시 검색한다.
사진 열어보고 지금 들어가고 있는 약 검토하고, 내가 적어 둔 의무기록들을 다시 본다.
'아! 그랬었지. 다음엔 이 검사를 해보자고 해야겠다. 다음엔 약을 바꿔야겠다' 그렇게 생각이 나면 의무기록을 정정한다.
그런 메모지가 20장이 넘는다.
환자 기록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청소 중단.
메모지를 붙이는 판을 만들었다. 거기다 붙여둔다. 다른 메모들이랑 섞이지 않도록.
이런 청소의 폐해는
정리가 다 되기 전에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지친다.
더 이상 청소를 계속할 의지가 떨어진다. 에라 모르겠다, 나머지는 대충 대충 정리한다.
메인 컴퓨터 옆에 노트북 컴퓨터도 부질없이 전원이 들어와있다.
어제 먹다 만 커피도 2잔. 물 한병. 포도껍질 한접시. 아이고 지저분하다.
읽다 만 논문을 종류별로 분류하니 책꽂이도 부족하고 책상위를 가득 채운다.
역시 논문은 읽고 나서 바로 머리속에 정리를 하지 않으면 자리만 차지하는 무용지물이다.
너무 지저분해서 컴퓨터에 체계적으로 저장해 놓고 컴퓨터 화면으로 읽어보려고도 해봤지만
눈에 띄지않으면 금방 기억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책상 위에서 굴러다니는게 낫다.
메모지 중에
'꾸찌뽕' 먹어도 되요?
'부처님손'은요?
'진대'는 어때요?
지난주에는그런 건강보조식품 등에 대한 문의가 많았나보다.
우리나라에는 출처도 알 수 없고, 이름도 희한한
몸에 좋다는 음식이 많다.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이미 드시고 있는거 아니에요?'
'ㅎㅎ 맞아요.'
'드셔보시니까 어때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심리적 위안 차원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으니까, 남들이 좋다는 음식을 찾아 드시나보다.
벌써 일요일 오전이 지나가네...
눈에 보이는 책상을 깨끗이 정리하듯
머리속도 정리하고
비온 후 찾아올 겨울 준비도 하고
주말을 소소히 조용히 잘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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