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감정적 오류

슬기엄마 2011. 11. 12. 11:21


의사들은 감정에 의존하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한다.
환자에 대해 강한 감정이 생길 경우, 설사 그것이 긍정적인 감정이라 해도 의사들은 경계해야 한다.
의사들은 당연히 환자를 깊이 염려하고 좋은 결과를 바란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문제를 철저히 파헤치지 못할 수도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환자에게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내려고 편법을 동원하는 식의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 제롬 그루프멈 지음, 닥터스 씽킹 (How doctors think) 중에서

의사의 판단은 어떻게 내려지는가, 그 인식의 과정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2007년에 1쇄가 나왔는데
올해 11쇄를 찍었으니
많은 의사들 혹은 의사를 지망하는 사람들 혹은 의사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꽤 많이 읽은 책이 된 것 같다. 
1쇄를 사서 읽었지만
그로부터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고
책장 구석에 처박혀 있어서 잊고 있었던 책이다.

어느날 이 책이 눈에 다시 들어왔다.

의사가 환자 진료를 위해 수행하는 인지 및 판단 과정에는
수많은 오류가 개입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 오류의 사례를 읽으며
내 진료 과정, 나의 진료 패턴을 되돌아보게 된다.
특히 실수에서 배운 뼈아픈 교훈들을 소개한 부분에서는 앉은 자세를 바로 하고 책을 읽는다.


내 또래 유방암 환자를 볼 때
마음이 편치 않다.
그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면 나도 같이 흔들린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을까.

나는 멀리 사는 지방 환자들이 항암치료 중 종양평가를 위해 다음 외래 1주일 전에 CT를 찍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그렇게 미리 CT를 찍으면 예약도 미리 해 두고, CT를 찍고 나서 영상의학과 판독도 미리 챙겨둘 수 있기 때문에, 외래에서 진료하며 결과를 설명하기가 편하다.

그렇지만 난
생계가 바쁘고 기차, 버스 왕복비용과 그 시간,
그리고 서울에 왔다갔다 해야 하는 환자의 육체적인 힘듬.
이런 것들을 고려해,
외래 당일 오전에 CT를 찍고, 내가 사진을 직접 본 후 애매한 것만 당일 영상의학과에 판독을 요청하여 결과를 확인한 후에 오후에 외래를 보게 하는 편이다.
이렇게 하면 외래 담당간호사도, 나도, 영상의학과 판독의사도 다 힘들다. 일에 너무 압력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뭔가 압력을 느끼며 획득하게 되는 정보의 정확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환자도 병원에 와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환자와 같이 좋아하기는 쉽지만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표정관리가 어렵다.
이제 나를 좀 아는 환자들은 내 표정만 봐도 분위기를 짐작한다. 너무 나의 내면이 노출되었다.

감정은
환자의 영혼에는 눈뜨게 하지만
환자의 문제에는 눈멀게 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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