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분을 근본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환자의 상태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약간의 조울이 있는데, 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베이스라인은 환자 상태가 결정한다.
요즘은 우울 모드이다.
몇일 전 그리고 오늘
얼마전까지 멀쩡하던 환자가 갑자기 말을 안하고 멍해지고 의식이 흐려져서 응급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명은 급성 뇌경색.
한명은 간성 혼수.
급성뇌경색 환자는 밤 9시에 주무실 때까지 가족들과 얘기도 잘 하고 멀쩡하셨는데
새벽 3시에 으으 신음소리를 내서 가족들이 깨우니 반응이 없고 의식이 흐려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CT를 찍고 뇌 큰 혈관에 혈전이 생긴 급성뇌경색을 진단했지만, 급성뇌경색을 치료하는 골든타임인 6시간이 지나 발견되어 혈전용해제를 쓰는 치료적 적응증이 되지 못해 경과관찰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골든타임이 지나서 혈전제를 쓰는 것은 이득보다 뇌출혈 등의 위험성이 높아 혈전용해치료를 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환자는 뇌 전이도 있어 혈전용해제를 쓰는 것이 특히나 위험하다.
급격히 환자의 의식 상태가 흐려지고 어떤 자극에도 반응이 없다.
그냥 경과관찰하는 것이 치료이다. 다른 나쁜 일이 추가적으로 생기는 것을 방지하면서 말이다.
환자는 몇일째 의식이 없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
간성 혼수 환자는
원래 간경변이 심해서 혈소판 수치가 낮았다. 항암치료에는 반응이 좋았지만, 혈소판 감소증이 심각하게 반복되어 치료를 하지 않고 그냥 보존적 치료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경과관찰 중 어지러워서 자꾸 넘어지고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정도가 되어 MRI를 찍었더니 뇌전이. 뇌 방사선치료를 시작하였다. 뇌방사선치료도 혈소판감소증이 악화되는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환자의 어지러움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검사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방사선 치료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아침 회진까지 잘 걸어다니고 방사선 치료의 반응을 보이던 환자가 저녁에 갑자기 의식이 흐려졌다. CT상 이상은 없다. 간전이가 악화되고 간경변이 진행되는 과정에 발생한 간성혼수였다. 암모니아 수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치료이기 때문에 관장하고 의식확인하고 관장하고 의식확인하는 것을 반복하기, 설사시키기가 치료다. 무식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환자의 가족들은 다른 어떤 증상변화보다도 환자의 의식저하에 매우 민감하다.
갑작스러운 의식저하는 마음의 준비없이 맞닥뜨리게 되어 감정적 혼란이 극도에 달한다.
두분 모두 유방암 자체는 악화되고 있는 터라
질병 진행 과정 중 있을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의사의 이러한 판단과는 달리 정작 가족들은 망연자실이다.
같이 CT찍는 촬영실에 따라가 사진보고 설명하고 이후 예상되는 경과를 설명하기를 수차례.
처음으로 전이를 진단받은 환자가 요로 폐색으로 갑자기 소변이 안나오고 신장수치가 정상인 1에서 20까지 올라 응급 투석을 시작하였다. 머리가 아프고 혈압조절도 잘 되지 않아 찍은 뇌 MRI에서는 다발성 뇌전이. 투석과 요로카테타 삽입, 뇌 방사선치료가 동시에 진행된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환자는 하루에도 피검사를 여러차례 해야 한다. 칼륨 수치가 조절되지 않으면 심장마비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혈뇨로 인해 카테타가 막혀서 응급으로 신장 바깥쪽에서 접근하여 임시로 관을 만들었다. 환자는 아직 많이 젊다.
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던 유방암 환자. 폐렴으로 입원하였다. 일반적인 폐렴이 아니다. 모양이 아주 고약하다. 환자의 호흡곤란이 좋아지지 않는다. 곧 수술 예정이었는데 이게 왠 날벼락인가. 딸이 이번에 수능시험을 본다. 숨이 찬 엄마는 퇴원하고 싶어한다. 말도 안된다.
항암치료를 받고 퇴원한 자궁경부암 환자, 혈변을 보고 혈압이 떨어져서 왔다. 예전에 골반에 방사선치료를 받아 방사선 장염이 왔나보다. 응급으로 직장내시경을 한다. 백혈구 수치도 아주 낮다. 모니터링을 위해 몸에 온갖 모니터링 줄이 연결되어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기입원 할머니, 2차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바로 열이 난다. 이제 겨우 치료반응이 나타나 부었던 팔이 가라앉기 시작하는데, 눈물을 머금고 항암제를 잠근다.
처음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 혈관이 좋지 않아 케모포트를 넣었는데, 잘 작동하지 않는다. 여러번 시도했지만, 결론은 빼기로 했다. 내일 수술하여 케모포트를 제거하고 큰 혈관이 새지 않도록 혈관수술을 하여 꼬매야 한다.
오후에 나빠진 환자들 때문에 병동을 찾았다.
상태가 않좋은 몇명의 환자와 가족들을 면담하였다. 면담 후 나를 만난 1년차 전공의, 농담처럼 말한다. '선생님, 도망갈 것 같은 얼굴이에요' 세상에 1년차한테 이런 말을 듣다니. 나의 걱정이 얼굴이 너무 드러나나 보다.
환자들의 상태가 나빠지고 불안정하면, 나의 기분은 훨씬 불안정해진다.
내가 아직 미숙하고 경험이 없어서 그러는 걸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의사에게는 수많은 환자들 중의 한명일 수도 있지만
환자는 인생 최대의 위기이기 때문에
그 순간에 의사는 함께 해야 한다.
의학적으로는
진행성 암환자에게 예상치 못했던 나쁜 일이 발생하는 건 운명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때론
눈앞에서 뻔히 환자가 나빠져 가는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의학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환자와 가족들은 그렇지 않다. 전혀 당연하지 않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도 그 순간 의사가 함께 하여 과정을 설명하고 예후를 설명해주면
위기를 받아들이고, 나쁜 예후라도 각오하며 받아들이는 경향이 훨씬 높아진다. 상황을 수용할 수 있다.
난 그래서 그들과 함께 하려고 한다.
비록 이 순간이 지나고 결과적으로 환자가 나빠지더라도
나는 그 길을 함께 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 순간의 노력이 짧은 찰나를 지나 무용지물이 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해도
우울모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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