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환자의 초대

슬기엄마 2011. 10. 22. 12:18


사실
얼마전 쓴 글 중의 하나를
공개로 올렸다가 비공개로 전환한 적이 있었다.
글 내용 중에 환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가 언급되는데, 환자에게 미리 얘기하고 허락받고 쓴 글이 아니라서... 누군가가 지적해주었다. 그렇게 하면 안되는 거라고.
에쿠 뜨거워라 하고 감추고 나서
왠지 글쓰기기 소심해졌다.

그 글은 지금으로부터 한참 전에 쓴거라 뒤쪽으로 가야 나오는거라 찾기 어렵지만 
오늘 공개로 전환하였다.
어제 외래에서 환자를 만나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선생님, 그때 전시회 와 주셔서 감사해요. 바쁘실텐데...
병원이 아닌 곳에서 보니, 아주 씩씩하고 겁도 없고 멋있던데요. 작품 설명할 때 좀 멋졌어요.
(환자는 항암치료 할 때 겁이 아주 많았다.)
ㅎㅎ 저 좋은 일도 있어요. 내년에 더 좋은 전시회 기회를 갖게 되었어요.
그럼 잘 나간다는 뜻인가요?
ㅎㅎ 출발은 좋아요.
그때 전시회 얘기 블로그에 써도 되요?
그럼요.

그렇게 간단하게 허락을 받았다.
어제로 마지막 항암치료. 독감주사 맞을까 말까, 치과 갈까 말까, 일정이 많은 그녀는 스케줄 짜는 것에 마음이 복잡하다. 그렇게 부산스러워 보이는 그녀가 좋다. 가발도 4개나 산 그녀, 그녀의 활발함이 좋다.

사실 난
예술엔 잼벵이다.
음악, 많이 듣지만 별로 아는 거 없고 그냥 흐르는대로 듣는다. 가요도 듣고 재즈도 듣고 클래식도 듣고 그냥 많이 듣는다. 고급 스피커 아니고 컴퓨터 옆에 놓은 만원짜리 작은 책상용 스피커로. (좋은 스피커로 들으면 훨씬 좋다고 하지만, 난 지금도 좋다.)
미술, 잘 보러 다니지 않는다. 전시회장 가면 일단 1시간 지나면 배고프고 힘들다. 아무것도 눈에 안들어와서 휴게싶부터 찾는다. 최소한 커피 한잔이라도 마셔야 다음 방으로 발을 옮길 수 있다. 그래도 큰 그림은 멋있긴 하다. 그 앞에 서서 와 하고 압도당하는 기분. 누구의 무슨 작품이고, 언제 만든 작품인데 그전의 무슨 작품이랑 비교해봤을 때 어떤 의미가 있다느니 그런거 하나도 모른다. 그냥 가서 보고 와 하고 온다. 물론 잘 보러 다니지도 않는다.
공연, 잘 보러 다니지 않는다. 사실 공연은 참 좋아하는데 시간을 못낸다. 공연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감동, 그것은 바로 그 시간에 함께 하기때문에 그 순간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준다. 그렇지만 바쁜 일정을 쪼개서 갈만큼 문화교양인은 아니다.

그런 내가 환자의 전시회에 갔던 것은 내 환자니까 갔었다.
그래서 느꼈던 감동이 컸다.

치료를 마치고 나가는 그녀, 이제 진료실에서의 인연이 끝나길 바란다.
그리고 새로운 인연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내년 전시회에 초대해 준다고 했다.
그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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