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가끔은 기도를...

슬기엄마 2011. 10. 22. 11:18

환자에게 특별히 신경 안써도
일일 술술 풀리고
검사 수술 스케줄이 탁탁 맞아떨어지면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별로 힘 안들이고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있고
- 환자는 고맙다고 하지만 정작 나는 해드린거 별로 없이 저절로 일이 잘된거라 민망하고...

자꾸 일이 꼬이고
여러 단계에서 걸러지기 마련인 일들이 한꺼번에 빵꾸가 나면서 일정이 지연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환자가 안 좋아지고
신경을 쓰는데도 일이 잘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 환자는 분노하고 있는데, 일이 안풀리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쨋든 최종 책임은 주치의인 내가 져야 하는거니까 죄송할 따름이고...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해야겠지만
최선을 다해도 잘 안되는 일, 뭔가 운명적인 일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느낌을 받을 땐 잠시 호흡을 멈추고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기도란
마음과 정신을 다시 모아야겠구나 하는 결심과,
나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분에게 최대한 떼를 써서 이번 한번만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어이없는 요구를 하는 시간이다. 우습지만 그렇게 부탁을 드린다.


뭔가 자꾸 해결이 안되는 상황에서 나를 처음 만난 환자.

병원에 대한 신뢰, 앞서 진료한 의사에 대한 신뢰
이런 것들이 모두 깎이고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실망과 분노, 원망,
스스로의 병 상태에 대한 절망
이런 감정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치료적 관점에서 새로운 결정을 해야하기 때문에
환자랑 솔직하게 대면해야 한다.
내가 애써서 돌려놓을 수 있는 환자의 마음이 남아있는지...
그 마음이 있다면 돌릴 수는 있을지...
그것이 한두번의 면담으로 가능하겠는가.

면담 중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득 고인 눈물을 보인다. 그녀의 분노가 느껴진다.

일이 잘 안풀리기도 했지만 실재 결정이 어려운 케이스이기도 했다. 그래서 결정이 지연되고 있기도 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그러나 솔직한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환자가 믿을 수 있는, 이해할 수 있는, 확실한 결정을 가지고 만나야지. 내 마음은 얼마나 전달되었을까.
나는 최대한 일정을 앞당기고, 환자에게 적절한 선택을 하기 위해
여러 과 선생님들과,
또 같은 과 선생님이라도 의견이 다를 수 있는 선생님들께 환자의 사례에 관해 상의하여 결정을 내렸다. 일정도 번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번 확인하였다.

24시간만에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오늘 아침 그녀는 내 말을 조용히 들어 주었다. 
내가 세운 앞으로의 치료계획을 설명했다. 
환자가 동의하였다.
방을 나서며
짧은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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